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재료다. 좋은 재료가 있어야 최고의 요리가 탄생하는 것이다.
기업의 세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수준 높은 연구개발과 마르지 않을 정도의 강력한 자본, 촘촘한 네트워크 판매망보다도 어쩌면 아이템이 가장 중요할 수 있다. 좋은 아이템이 있다면 수요가 공급을 원하는 게 시장의 원리다.
그래서 조성철(57) ㈜이아이에스(EIS) 대표는 그래서 치열한 무한경쟁의 기업계에 뛰어들기 전 아이템에 대한 고민을 강조한다. 물론 아이템 선정을 가장 크게 뒷받침하는 건 경험이라면서다.
◆재무+기술평가
조 대표는 원래 CFO 관련 일을 했다. CFO는 회사의 자금 부문 전체를 담당하는 총괄책임자를 말하는데 사실상 중소기업에선 대개 CEO가 맡는다. 그러나 CEO는 재무적인 지식이 없는 경우가 많다.
조 대표는 이들을 대상으로 관련 교육을 진행하고 이들 간 네트워크의 장을 마련하는 업무를 맡았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조 대표라고 못할쏘냐. 매주 관련 교육을 진행하기 위해 매일 관련 자료와 시장 상황, 정부의 정책 등을 공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업 재무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후 조 대표는 직을 옮겼다.
다음 직업은 기술평가사였다. 기술평가사는 기술의 기술성이나 시장성, 사업성 등을 총괄적으로 분석해 이에 대한 경제적 가치 등을 정량적으로 평가하는 일이다. 이 역시 장기간 업무를 보다 보니 어떤 기술이 시장성이 있는지에 대한 여부 정도는 판단할 정도의 눈썰미를 갖게 됐다.
기업의 재무 지식, 기술성 여부 등에 대한 어느 정도의 파악이 가능해지자 조 대표는 자신이 직접 CEO에 도전하겠단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재무에 대해서 우선 파악하고 추후 기술성 유무에 대한 판단도 가능해지니 한번 사장이 돼볼까 생각했죠. 우선 그렇게 마음을 먹고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딱 눈에 띈 게 있었죠. 재해 관련에서도 특히 우리나라에서 자주 발생하기 시작한 지진계측기가 딱하고 떠올랐어요.”
◆발로 뛴 세일즈
한반도는 지진이 가끔 일긴 했지만 먼 나라 이야기라 치부했다. 그러나 1년에 한 번 꼭 지진이 발생했고 특히 2004년과 2007년 경북 울진과 강원 오대산 인근서 진도 5라는 기록적인 흔들림이 일었다. 지진의 주기가 짧아지고 점차 규모 등이 커지자 정부는 관련 재난 대책을 한창 수립하기 시작했다.
조 대표는 CFO 관련 업무에서 정부 정책 동향을 늘 주시했기에 이를 인지하고 있었고 2011년 지진계측기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기로 했다. 정부는 관련 재난 대책을 수립하면서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지진에 대비하기 위해 자치단체에 지진계측기 설치를 명령했다.
그런데 자치단체 입장에선 도대체 지진계측기가 무엇인지 전혀 몰랐다. 그래서 지진이 국내서 상대적으로 자주 발생하는 다른 자치단체에 수소문해 영국제 지진계측기를 추천받았다. 문제는 영국제다 보니 원활한 AS는커녕 워낙 자주 고장이 나 쓸 수가 도저히 없었단 것이었다.
조 대표는 곧바로 이를 국산화하겠단 생각에 곧바로 아이템을 구상한 이듬해 이아이에스를 창립하고 연구개발에 몰두했다. 연구개발 끝에 그는 2015년 지진계측기 국산화에 성공했고 이를 알리기 위한 전국 자치단체 순방에 나섰다. 강원에서 호남까지, 인천에서 영남까지, 심지어 비행기를 타고 제주까지 국토를 종횡무진했다. 당시 한 달 기름값은 평균 300만 원 이상이란다.
“당시 제 차가 버텨준 게 용하죠. 정말 국토대장정이었어요. 당시 영국제가 너무 문제가 많아서 적잖은 자치단체가 불만을 품었죠. 충남 논산시가 이아이에스의 첫 거래처였고 입소문이 나면서 판매처는 점차 늘었죠.”
◆“늘 고민하고 경험하라”
전국 243개 자치단체 중 이아이에스의 지진계측기를 사용하는 자치단체는 무려 80여 곳. 국내 지진계측기 시장의 30%를 이아이에스가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아이에스는 지진계측기와는 다른 새로운 관련 제품에 대한 연구개발이 한창이다.
현재는 상용화 직전 단계인데 제품이 완성돼 시장에 나온다면 지진 관련 시장에서의 이아이에스 점유율은 더 커질 것으로 조 대표는 보고 있다. 그의 이야기만 들어보면 아이템 구상에 성공하며 나름대로 탄탄대로만 걸어온 것처럼 보이지만 조 대표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경험하는 것에 집중했기에 지금의 성장세를 보일 수 있었다.
창업 이전 아이템에 고민했고 CFO와 기술평가사란 경험은 지금도 그에게 있어 가장 큰 자산이란다. 그래서 늘 고민하고 경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업인이라면 응당 가져야 할 자세란 것이다.
“경영이란 건 쉬운 게 아닙니다. 경영이란 건 나 혼자가 아니라 여러 사람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굉장히 막중한 자리입니다. 절대 쉽게 생각하지 않길 바라요. 그러니 기업의 세계에 뛰어들기 전 늘 고민하고 많은 걸 경험하세요. 이아이에스 직원은 수십 명이고 이들을 위해 전 더 큰 시장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늘 어깨가 무거운 셈이죠.”
지진 관련 새로운 제품을 조만간 선보일 것이란 조 대표의 표정에서 웃음은 떠나지 않았다. 그만큼 자신있단 뜻이다. 그의 새 제품에 대한 관심은 펀딩 결과에서도 나온다. 당시 그는 5000만 원만 투자받겠다고 했는데 무려 23명이 투자 의향을 밝히며 주주를 자청했다.
이 역시 우연은 아니다. 조 대표가 늘 강조하는 고민과 경험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그의 고민과 경험이 깊어질수록 우리나라는 한층더 안전해질 수 있다.
글·사진=김현호 기자 khh0303@gg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