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외국 여행을 다니다 보면,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황당무계한 관광지가 참 많다. 벨기에의 ‘오줌싸개 어린이 동상’, 덴마크 코펜하겐의 ‘인어공주 상’과 함께 독일 하이델베르크의 로렐라이 언덕의 ‘마녀 상’을 ‘세계 3대 사기’라고도 말하지만, 그 밖에도 셀 수 없이 많다. 우리 한반도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전설이 전해오고 있는데도, 이것을 세계인들에게 널리 알리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아이디어 부족이라고 생각한다.
베로나(Verona)는 12세기 초부터 자유도시가 되었는데, 구엘프(교황파)와 기벨린(황제파)가 심각한 갈등을 겪다가 결국 구엘프파가 승리했다. 귀족 가문의 권력다툼이 심한 베로나에서는 매일 혈투가 벌어졌는데, 가문들이 보호하기 위해 성벽을 요새처럼 쌓은 저택만도 700채가 넘는다고 한다. 전제군주인 에첼리노 도 로마노가 통치하면서 점차 평온을 찾았다.(자세히는 2023. 7. 16. 키안티 참조)

사실 베로나에는 1250년경 바르톨로메오 델라 스칼라가 통치하던 시절에 앙숙이던 몬터규가와 카풀레트가의 젊은 남녀가 사랑하던 끝에 죽었다고 하는 전설이 있는데,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1564~1616)가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만들었다. 셰익스피어는 18세 되던 1582년 8세 연상인 앤 해서웨이 (Ann Hathaway)와 결혼한 뒤 1585년부터 7∼8년 동안 베네치아, 베로나, 피렌체 등을 두루 여행했는데, 이때 보고 들은 경험이 그의 작품으로 탄생한 것이다. 그의 작품 리어왕, 맥베스, 햄릿, 오셀로 등 ‘4대 비극’ 중 가장 널리 알려진 ‘로미오와 줄리엣 (Romeo & Juliet)’, 베로나의 두 신사,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무대는 베로나였고 ‘베니스 상인’의 무대는 당시 최대도시 베네치아가 무대였다.

작품은 13세기 베로나를 지배하던 베네치아의 라벤나 총독은 베로나의 영주 에스카루스에게 앙숙인 귀족 몬터규와 케플렛가가 화해할 것을 지시했다. 이때 영주를 따라온 패리스 백작은 캐풀렛가의 13살 난 딸 줄리엣을 보고 반해서 결혼하기를 원했는데, 아버지 캐풀렛은 딸의 나이가 너무 어리다고 망설였지만, 어머니는 딸의 결혼에 적극 찬성했다. 한편, 몬터규가의 로미오는 사랑하는 연인 로잘린을 만날 수 없어서 의기소침해 있던 중 친구 벤볼리오가 캐풀렛가의 가면무도회장에 가면 로잘린이 올지도 모르니, 함께 가보자고 권한다. 그러나 몬터규가와 캐풀렛 두 가문의 사이가 좋지 못한 터라서 로미오는 벤볼리오와 캐풀렛가에 몰래 숨어들었다가 발코니에 있는 줄리엣을 보고 첫눈에 반했다.
로미오의 열렬한 구애에 줄리엣은 로미오의 사랑을 받아들였다. 앙숙인 두 가문의 남녀는 로마가톨릭의 수도사 로렌스 수사에게 도움을 청하자, 마침 두 집안을 화해시키려고 노력하던 수사는 두 사람의 비밀 결혼식을 주관해주었다. 하지만, 다음날 길거리에서 또다시 두 가문 사이에 싸움이 벌어져서 캐풀렛가의 티발트가 로미오의 친구 머큐리오를 죽였다. 이에 격분한 로미오는 줄리엣의 사촌인 티발트를 죽였고, 결국 로미오는 베로나에서 추방되었다.
한편, 아버지로부터 패리스 백작과의 결혼을 강요받은 줄리엣은 로렌스 수도사를 찾아가서 도움을 청하니, 그는 줄리엣에게 약을 마시면 42시간 동안 죽은 것처럼 보이는 비약(秘藥)을 주면서 줄리엣이 그 약을 마시고 죽은 것같이 있는 동안 로미오가 찾아와서 살려내는 생명의 은인처럼 하겠다고 말했다. 로렌스 수사는 이런 내용을 편지로 써서 로미오에게 보냈지만, 공교롭게도 로미오가 추방당한 도시에 전염병이 퍼져서 출입이 통제되는 바람에 편지는 전달되지 못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줄리엣은 로렌스 수사가 건네준 약을 먹고 죽었다.




로미오는 줄리엣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베로나로 돌아와서 줄리엣이 패리스 백작과 강제 결혼을 거절하면서 죽은 것으로 여기고, 패리스 백작과 결투하여 그를 죽였다. 그리고 마을 공동무덤에 있는 줄리엣을 찾아가서 최후의 키스를 한 후 자신도 음독자살한다. 얼마 후 깨어난 줄리엣은 곁에 죽어있는 로미오를 발견하고, 로미오의 뒤를 따라 자살한다. 그 뒤 두 가문은 모든 사실을 알게 되고 화해하는데, 희곡에서는 많은 사건이 벌어지지만, 날짜로 따져보면 겨우 5일 동안에 일어난 사건이다.
베로나의 중심인 에르베 광장에서 마찌니(Mazzini) 거리를 따라가면, 셰익스피어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 (Romeo & Juliet)’의 무대가 된 줄리엣의 집이 있다. 길을 모르더라도 낯선 수많은 여행객을 따라가면 된다. 베로나에는 줄리엣의 무덤, 로미오의 집과 줄리엣의 집 등이 있지만, 그 유적들은 모두 셰익스피어의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의 명성을 이용하여 만든 가짜들이다. 줄리엣의 집은 베로나시에서 1905년 13세기에 건축된 저택을 개조하여 만들어서 박물관이라고 이름 붙였다. 여행객들은 마치 역사적 장소인 것처럼 줄리엣의 집에 몰려드는데, 입장료는 6유로이다. 베로나 카드가 있으면 무료입장할 수 있다.

정원에 있는 줄리엣의 동상도 물론 가상의 여인상인데도 그 오른쪽 젖가슴을 만지면, 운명적인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전설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수많은 손끝이 만져진 젖가슴은 반들반들하다. 2층으로 올라가면 줄리엣이 사용했다는 침대와 드레스 등이 전시되어 있지만, 모두 인위적으로 만든 것인데도 베로나를 찾는 여행객들의 관광 필수코스가 되어서 매일 수많은 사람이 줄을 지어 찾고 있다. 아마도 그 시기는 오랫동안 신학에 종속되었다가 해방된 문예부흥기를 맞아 순수한 청춘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널리 유행처럼 번진 시기였던 것 같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