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 산비탈레 성당

라벤나(Ravenna)는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고도이자 서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서고트족, 서고트족을 멸망시킨 동고트족, 동고트족을 멸망시킨 동로마 등 5세기부터 8세기까지 여러 민족이 다양하게 지배하면서 이룩한 초기 기독교 문화를 많이 간직하고 있는 고대도시다. 라벤나에서 가장 유명한 산비탈레 성당(Basilica di San Vitale)은 6세기 중반 동로마 유스티아누스 황제 (Justinianus Ⅰ: 482∼565)가 라벤나를 탈환한 뒤 이미 동고트 왕이 짓고 있던 로마 건축양식에 모자이크 등 비잔틴 기법을 절충한 성당이다.

비잔틴 문화(Byzantine Culture)는 5~6세기 동로마 제국에서 그리스 고전 문화에 기독교적 요소와 동양적 요소가 절충된 양식으로서 모자이크(Mosaic)와 프레스코(Presco)가 있다. 모자이크 기법은 고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시대에 시작되어 헬레니즘 시대인 4세기 초 이슬람에서 전파되어 비잔틴 시대에 가장 유행했다. 한편, 프레스코 기법은 회반죽을 벽면에 칠해서 평평하게 만들고, 그 회반죽이 마르기 전에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서 투명하고 깨끗한 느낌을 주었다. 프레스코 기법은 모자이크 기법보다 훨씬 세밀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고, 또 한번 그린 그림은 오랫동안 벽의 일부가 되어 벽의 표면을 뜯어내지 않는 이상 보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모자이크 기법과 프레스코 기법은 15세기에 네덜란드의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 1395~1441)에 의하여 유화(油畫)가 나타나면서 점점 사라지게 되었는데, 유화는 르네상스 이후 현재까지 서양화에서 가장 중요한 화법이 되었다.(자세히는 2023. 3. 1. 바티칸박물관 참조)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라벤나에는 모자이크 기법의 그림과 프레스코 비법의 초기 기독교 문화가 많이 남아있는데, 산비탈레 성당은 동고트족이 라벤나를 지배하던 526년 비탈레스 성인이 순교한 곳에 짓기 시작했던 것을 547년 동로마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라벤나를 탈환한 뒤 모자이크 양식에 비잔틴 기법을 절충하여 건축한 성당이다. 산 비탈레 성당은 아름다운 갈라 플라치디아 영묘 바로 옆에 있어서 동로마 황제가 서로마의 전통을 이어보려고 노력한 흔적을 짐작하게 해준다.

제실의 영광의 그리스도상
제실의 영광의 그리스도상
예배당과 건물의 중앙 부분 사이에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이탈리아반도 수복을 기념하는 개선문도 있는데, 개선문의 천장에는 그리스도와 사도바울을 비롯해 열두 제자, 성 비탈레스, 성 게르바시우스 등을 묘사한 15개의 메달을 장식했다.
예배당과 건물의 중앙 부분 사이에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이탈리아반도 수복을 기념하는 개선문도 있는데, 개선문의 천장에는 그리스도와 사도바울을 비롯해 열두 제자, 성 비탈레스, 성 게르바시우스 등을 묘사한 15개의 메달을 장식했다.
천정화와 벽면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천정화와 벽면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유스티나이 황제상
유스티나이 황제상

성당의 건물 외관은 2층 구조이지만, 8각형에 건물에 지붕은 돔(dome)으로 만들었다. 초기 기독교도들은 신과 인간의 공간을 팔각형으로 생각했는데, 이것은 이레 만에 세례를 받고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에서 7에서 하루를 더한 8이라는 숫자를 기준한 것이다. 성당의 출입문은 주제단이 있는 한군데를 제외한 일곱 군데의 모서리에 있는데,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건물 외관과 달리 색유리 모자이크 장식이 화려하다. 예배당과 건물의 중앙 부분 사이에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이탈리아반도 수복을 기념하는 개선문도 있는데, 개선문의 천장에는 그리스도와 사도바울을 비롯해 열두 제자, 성 비탈레스, 성 게르바시우스 등을 묘사한 15개의 메달을 장식했다.

성당의 중앙 천장에는 기하학무늬들이 초록과 황금빛으로 장식되어 있고, 태양을 상징하는 신의 빛과 자연을 상징하는 초록의 향연이 갈라 플라치디아 영묘의 천장보다 훨씬 세련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제실(祭室)에는 ‘구약성서’를 이야기로 그린 그림과 천장의 ‘하느님의 어린 양’이라는 페르시아 융단과 같은 식물무늬 등 금색·빨간색·녹색·파란색 등이 화려한데, 제실 가운데에는 ‘영광의 그리스도’상이 있다. 그 아래쪽 좌우에는 황제 유스티니아누스와 테오도라 황제를 그린 2개의 모자이크화가 있다.

보라색 옷을 입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그리스도에게 바칠 황금 쟁반을 들고 있고, 그 왼편에는 이탈리아를 정복한 벨리사리우스(Belisarius) 장군과 경호부대 스콜라 팔라티나이(Scholae Palatinae)들이, 오른쪽 두 번째 십자가를 들고 있는 인물은 라벤나 주교 막시미아누스(Maximian)다. 반대쪽 벽면에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왕비인 테오도라 황제가 일곱 명의 시녀와 시종들이 그리스도에게 바칠 성배를 들고 있는 모습의 모자이크화가 있다.

벽면 성인들의 모자이크
벽면 성인들의 모자이크

로마법대전을 편찬하고, 로마제국의 부활을 꿈꾸던 위대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콘스탄티노플의 근위군사령관이던 숙부 유스티누스 1세의 양자가 되었다가 그의 사후 동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어 18년 동안 다스리면서 많은 공적을 남겼다. 하지만, 그는 콘스탄티노플의 전차경기장에서 맹수들을 키우던 동물사육사 아카카우스의 딸 테오도라(Theodora: 500?∼548)의 미모에 빠져서 그녀를 귀족으로 신분을 바꾸고, 정식 아내로 삼았다. 어려서 부모를 잃은 키프로스 섬 출신인 테오도라는 극장에서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며 뭇사람들의 노리개가 되었으나, 그녀의 타고난 미모에 반한 젊은 부황제이자 원로원 의원인 유스티니아누스는 귀족은 천민과는 결혼할 수 없다는 법을 고쳐서 그녀와 결혼했다.

수많은 관중 앞에서 춤을 추고, 밤이면 아무에게나 안기고 몸을 팔던 그녀가 이제 고관대작들이 존경을 표시해야 하는 당시 법도와 혼란스러웠을 사회윤리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녀를 공동 황제로 하여 통치한 신데렐라 같은 여인이다. 산 비탈레 성당과 연결된 국립박물관은 1885년에 개관되어 초기 로마 시대부터 18세기의 물건들까지 잘 보관되어 있는데, 특히 모네타(Moneta)라고 하는 당시 사용하던 동전들이 볼 만하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