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를지(Terelj) 국립공원은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동쪽으로 약 80㎞ 떨어져 있다. 복드 칸 산맥의 최고봉인 체체궁산(2256m)은 몽골인들이 가장 신성시하는 산으로서 울란바토르와 테를지를 함께 에워싸고 있다. 테를지 국립공원은 드넓은 초원이 끝없이 펼쳐지고, 한쪽에는 기암괴석과 숲으로 어우러진 산이다. 테를지 국립공원에서는 푸른 초원, 하얀 게르 촌, 기암괴석으로 어우러진 이국적인 풍경, 트레킹과 승마 체험, 밤하늘에 은하수를 구경할 수 있는데, 특히 초원에서만 볼 수 있는 유목민족의 가축과 몽골식 전통 게르 등이 이색적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는 몽골의 평균 고도보다 낮은 1350m 정도이고,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여서 여름에는 매우 무덥고, 겨울에는 몹시 춥다. 울란바토르 시내의 칭기즈칸박물관에서 북서쪽으로 약 30분 거리에는 몽골 라마 불교의 총본산이자 가장 큰 간단사원(甘丹寺)이 있다. 정식 명칭은 간단테그치늘렌 사원(Gandantegchinlen Monastery)으로서 간덴은 미륵보살이 사는 정토인 도솔천(兜率天)을 의미하며, '완벽한 기쁨을 지닌 위대한 장소'라는 뜻이라고 한다.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티베트로 들어온 불교는 전래의 토
울란바토르 시내에서 남쪽에 있는 자이승(Zaisan)은 ‘울란바토르의 강남’이라고 할 만큼 부자촌인데, 이곳에는 서울의 남산처럼 울란바토르에서 가장 높은 산꼭대기에 자이승 전망대가 있다. 울란바토르의 시민 공원 격인 자이승 전망대는 몽골이 구소련군과 함께 연합군으로 참전, 2차 대전에서 승리하여 1971년 몽골 사회주의 혁명 50주년 기념으로 구소련이 몽골에 기증한 탑이 있다. 이곳에서 울란바토르 시내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어서 몽골 여행객들에게는 꼭 한번 들르는 필수코스이기도 하다.산 중턱에 주차장이 있지만 매우 협소해서 주차하기
울란바토르 시내 남쪽에 있는 ‘복드 칸(Bogd Khan) 겨울궁전’은 몽골의 마지막 칸인 복드 칸이 1893년에 착공하여 13년 만인 1906년에 완공한 건물이다. '복드 칸'의 복드란 라마교에서 생불(生佛) 또는 활불(活佛)을 의미하며, 칸(大汗)은 정치 지도자로서 복드 칸은 라마교의 최고 수장이자 정치의 지도자를 의미한다. 1905년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는 몽골에 대한 친선의 의미로 이곳에 서양식 2층 목조 건물을 지어주었는데, 복드 칸은 이 궁전에서 20여 년간 살다가 죽었다. 복드 칸의 생전에 4개 왕궁이 있었으나, 복드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는 몽골의 전체인구 350만 명 중 절반가량인 160만 명이 살고 있는데, 울란바토르 관광은 수흐바타르 광장에서 시작한다. 울란바토르란 몽골어로 '붉은 영웅'이라는 뜻이며, '붉은 영웅'은 독립 영웅 수흐바타르(Damdinï Suhbator)를 기리는 이름이다. 1911년 외몽골이 독립을 선언했을 때 지금의 울란바토르는 '니이슬렐 후레헤'라고 했는데, 니이슬레 후레헤란 ‘큰 울타리’란 뜻으로서 몽골의 라마교 총본산이자 최대의 사원인 간단 사원(甘丹寺)의 담장 주위로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살기 시작하면서 붙여진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 있는 몽골(Mongolia)은 중국과 러시아의 지배를 번갈아 받다가 1912년 청나라 몰락 후, 1921년 중화민국으로부터 독립했다. 몽골은 1921년 7월 11일을 건국일로 기념하고, 이날을 나담 축제(Naadam)라 하여 거국적인 행사를 벌인다. 몽골은 내몽골과 외몽골로 나뉘는데, 내몽골은 후금이 건국할 때부터 원나라 제국의 옥새를 후금에 바치고 청의 황제를 대칸(大汗)으로 모셨으나, 외몽골은 청에 대항하다가 멸망했다. 내몽골은 지금까지 중국의 영토 네이멍구로 남아있고, 우리가 알고 있는 몽골은 외몽골이다.
스위스 루체른(Luzern)은 북유럽의 젖줄인 라인강 상류와 롬바르드 지방 사이에 있는 교통의 중심지이자, 알프스산맥에 걸쳐 있는 스위스의 도시 중 가장 아름다운 도시이다. 루체른은 루체른 주의 주도(州都)이지만, 인구는 겨우 6만 명의 작은 도시이다. 루체른은 8세기경에 베네딕투스의 수도회의 장크트 루시아리아 수도원이 설립되면서 형성된 마을로서 루체른이란 ‘빛의 도시’라는 의미이다. 루체른은 1178년 자치시(自治市)로 인가받았으나, 1291년 합스부르크가의 루돌프 4세가 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수도원과 도시를 매수하자, 주민들
스위스에서 알프스산맥의 최고봉인 융프라우(Jungfrau: 4158m)는 독일어로 ‘젊은(Jung) 여인(Frau)’이란 의미라고 하며, 2001년 UNESCO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됐다. 융프라우로 올라가는 알프스 계곡 입구인 인터라켄(Interlaken: 567m)에서 산꼭대기인 융프라우요흐역(Jungfraujoch: 3,454m)까지는 약 9.3㎞까지는 산악열차를 타고 올라가는데, 2시간 30분이 걸린다. 인터라켄 동역(Ost)에서 출발하는 산악열차는 동쪽의 그린델발트역(1034m)으로 올라가는 노선과 서쪽 라우터브루넨(Laut
유럽에서 가장 높은 알프스산맥은 스위스, 프랑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 여러 나라에 걸쳐 있는데, 최고봉인 몽블랑(Mont-Blanc: 4158m)은 프랑스의 샤모니(Chamonix)에서 올라가고, 스위스에서 최고봉인 융프라우봉(Jungfrau: 4158m)은 해발 1034m인 그린델발트(Grindelwald)에서 올라갈 수 있다. 전문 산악인이 아닌 일반인이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는 융프라우는 스위스의 수도 베른주와 발레주 사이에 있는 설산인데, 융프라우란 독일어로 ‘젊은(Jung) 여인(Frau)’이란 의미라고 한다. 융프
스위스의 제네바의 론강 북쪽 신시가지에는 수많은 국제기구가 있다. 스위스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제네바는 영어로 제네바라고 하지만, 현지인들은 프랑스어로 '주네브(Genève)'라고 부른다. 제네바는 제네바주의 주도(州都)이자 취리히, 바젤에 이어 스위스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데도 공식 언어는 프랑스어다.신시가지 국제선 열차인 코르나뱅 역(Garede Cornavin)과 국내선 열차 오비브 역(Eaux- Vives)이 있는데, 스위스 영토인데도 프랑스 철도안내소(SNCF)와 스위스 국철 안내소(CFF)가 따로 있을 만큼 프랑스
스위스에서 가장 서쪽으로 돌출되어 삼면이 프랑스에 둘러싸인 도시 제네바(Jeneva)는 스위스에서도 매우 이색지역으로 꼽힌다. 도시는 영어로 제네바라고 하지만, 현지인들은 ‘주네브(Genève)’라고 부른다. 제네바는 제네바주의 주도(州都)이자 취리히, 바젤에 이어 스위스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데도 공식 언어는 프랑스어다. 제네바의 신시가지 국제선 열차인 코르나뱅 역(Garede Cornavin)은 스위스 영토인데도 프랑스 철도안내소(SNCF)와 스위스 국철 안내소(CFF)가 따로 있을 만큼 프랑스 영향이 크다. 알프스 계곡에서
스위스는 동쪽에 오스트리아, 서쪽에 프랑스, 남쪽에 이탈리아, 북쪽으로 독일과 인접한 나라서 남한의 절반도 되지 않는 4만㎢(남한 9만 8000㎢)에 서울시 인구보다 적은 약 900만 명이 살고 있다. 오랫동안 신성로마제국으로서 유럽을 호령하던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가도 1800년 초 나폴레옹의 침략으로 신성로마제국이 해체되고, 1차대전에서 패한 뒤 영토 분할로 오스트리아도 남한보다 작은 8만 3855㎢이고, 인구도 1000만 명 안팎이다.(자세히는 2023.10.10. 오스트리아 개요 참조)기원전부터 스위스 지역에 정착했던 사람들
오스트리아에서도 고산지대인 잘츠부르크의 가장 깊숙한 산골 마을인 할슈타트(Hallstatt)는 BC 2000년경부터 세계 최초로 소금 광산(Salzwelten)을 개발한 지역이라고 한다. 할슈타트란 지명도 이곳에 정착했던 겔트인들이 소금(Salz)을 ‘회색 황금’이라고 하는 겔트어 ‘hal’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높은 고산에서 흘러내린 빙하수가 계곡에 갇혀서 호수가 된 ‘할슈타트 호수’는 ‘잘츠카머구트의 진주’라고도 하는데, 이곳은 1965년 제작된 뮤지컬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으로 소개되기도 했다.(자세히는 2023.12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서쪽으로 약 320㎞ 떨어진 도시 잘츠부르크(Salzburg)는 독일어로 '잘츠'가 소금(Salz), 브루크(Burg)는 ‘성 또는 도시’이니, ‘소금의 도시’란 의미이다. 잘츠부르크 주도(州都)인 잘츠부르크는 해발 1500~3000m의 고산지대인데, 남동쪽으로 약 29km 떨어진 잘츠카머구트(Salzkammergut)는 독일어로 ‘소금(Salz)’, 황제의 창고(Kammergut)’라는 지명이다. 잘츠카머구트는 잘츠부르크 시내를 관통하는 잘차흐강을 통해서 소금을 실어 나르던 선착장이었다. 알프스산맥인 잘츠
잘츠부르크(Salzburg)는 해발 1500~3000m의 고산지대에 있는 도시로서 '잘츠'는 독일어로 소금(Salz), 브루크(Burg)는 ‘성 또는 도시’이니, ‘소금의 도시’란 의미이다. 잘츠부르크의 산골 마을 할슈타트(Hallstatt)는 BC 2000년경 세계 최초로 소금 광산을 개발했던 지역으로서 인정받아 1997년 마을 전체가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소금 생산으로 부유한 도시가 된 잘츠부르크는 일찍부터 음악·미술 등 각종 예술이 발달했으며, 잘츠부르크 시내를 흐르는 잘차흐강(Salzach River)은
잘츠부르크 시내를 가로지르는 잘차흐강(Salzach River)을 중심으로 호헨부르크 고성이 있는 산기슭을 배경으로 국립오페라 극장에서 북쪽으로 쭉 뻗어 '성 슈테판 대성당'까지 이어지는 게트라이데 거리(Getreidegasse)를 구시가지라고 하고, 트램이 달리고 미라벨 정원이 있는 강북을 신시가지라고 한다. 잘차흐강 위에는 마카르트 다리(Makartsteg)를 비롯하여 슈타트 다리, 모차르트 다리, 논탈어 다리 등 많은 다리가 있는데, 마카르트 다리를 건너기 직전 오른쪽에는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지휘자 카라한(H von Karaj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서쪽으로 약 320㎞ 떨어진 잘츠부르크(Salzburg)는 해발 1500~3000m의 고산지대에 있는 도시다. 잘츠부르크란 독일어로 '잘츠'가 소금(Salz), 브루크(Burg)는 ‘성 또는 도시’다. ‘소금의 도시’란 의미이다. 아시아와 달리 유럽에서는 지질 구조상 암염(巖鹽)이 많아서 잘츠부르크의 산골 마을 할슈타트(Hallstatt)는 BC 2000년경 세계 최초로 소금 광산을 개발했다. 할슈타트란 지명은 ‘회색 황금’이라고 하는 ‘소금(Salz)’의 고대 겔트어 ‘hal’에서 유래했다고 하고, 잘츠카머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서쪽으로 약 330㎞ 떨어진 잘츠부르크(Salzburg)는 해발 1500~ 3000m의 고산지대에 있는 도시다. 잘츠부르크로 가는 중간에 고대도시 멜크(Melk)가 있는데, 멜크는 합스부르크 왕가가 성립하기 전 130년 동안 다뉴브강 유역의 오스트리아를 지배하던 바벤베르크 왕조(Babenberg: 976~1106)의 수도였다.지리적으로 동쪽으로 빈과 118㎞, 서쪽으로 잘츠부르크와 210㎞, 북서쪽으로는 체코의 중세도시 체스키크롬로프(Český Krumlov)로 통하는 교통의 중심지인 멜크는 독일의 남부 슈
빈 국제공항에서 빈 시내로 들어오는 외곽 도로변에 중앙묘지가 있다. 중앙묘지는 1874년 당시 빈 시장 칼 뤼거(Karl Lueger)가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요한 슈트라우스, 브람스 등 유명 음악가들의 무덤이 시내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것을 한 곳에 조성한 공동묘지다. 중앙묘지는 UN사무총장과 오스트리아 대통령을 역임했던 쿠르트 발트하임(Kurt Waldheim: 1918~ 2007) 등 정치인, 종교계 지도자, 음악가를 비롯해 수많은 시민이 묻혀있는 공동묘지이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가들을 참배하러 연간 200만
빈 시내에서 D번 트램을 타고 외곽인 벨베데레 역에서 내리면, 곧바로 벨베데레 궁(Belvedere)이다. 1697년 신성로마제국 합스부르크가의 황제 군사령관 프란츠 오이겐(Franz Eugen von Savoyen–Carignan: 1663~1736) 공작은 빈 시내와 떨어진 초지와 농지뿐이던 이 이곳을 매입하고, 1717년 건축가 힐데브란트(Hildebrandt)에게 주거용으로 벨베데레 하궁(Unteres Belvedere)을 짓게 했다. 그는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과 튀르크 전쟁 때 총사령관으로서 큰 공을 세우고, 합스부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