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른 마당· 곡선의 美…구석구석 선비들의 성품 닮았네
건축에는 그 시대의 문화가 담겨져 있다. 지역문화 또한 건축에 직접 반영되고 있다. 건축물을 비교해 보면 그 지역의 지리환경, 역사성과 지역적 정서 등이 건축물에 표현돼 나타나고 있다. 어떤 것은 외부로 표현돼 잘 나타나지만 어떤 것은 내부로 표출돼 잘 나타나지 않는 것도 있다. 가령 건물의 배치나 형태 등은 달리 표현돼 있을 때 쉽게 인지할 수 있지만 주거생활이 서로 다른 것은 겉으로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또 어떤 것은 서로 비슷하게 닮기도 한다.
지역을 막론하고 나타나는 공통점이기도 하지만 크지 않은 한반도에서 서로의 장점을 적용하면서 나타난 결과이기도 하다. 아주 미미한 차이지만 건축은 그 지역의 문화를 보여주는 이정표라 할 수 있다.


충남의 지리적 특징은 다른 곳에 비해 달리 험준한 산이 적고 비교적 넓은 평야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생존하기 위해 끊임없이 다른 지역을 넘나드는 산악지대 사람들과는 근본적으로 기질이 다르게 형성돼 왔다.
북쪽에서의 대륙문화 유입을 기다릴 수 있는 지역이지만 조금이라도 이르게 외부로부터 문화적 양분을 받기 위해선 서해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선진문물을 비교적 다른 지역에 비해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충남지역은 다른 지역보다 유연하게 문화를 받아들였다.
이러한 지역적 특성은 건축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건축물은 반드시 땅에 점지해야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있고 땅이 어떻게 생겼는가에 따라 건물의 배치와 형태가 달라진다. 건축에 들어가는 재료 역시 영향을 받게 된다. 예를 들어 나무가 많이 나는 지역은 목조건축, 돌이 많은 지역은 석조건축, 흙이 많이 나는 곳에는 점토 등을 이용한 것이 많다.
충남지역은 경사가 약한 구릉지나 평지가 많아 이러한 지형에 적응될 수 있도록 지어졌다. 건물을 짓기 위해 축대를 쌓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토지를 최대한 이용할 수 있는 편이다. 때문에 건물과 건물 사이의 간격이 상당히 넓다.
가장 대표적으로 들 수 있는 것이 돈암서원과 노강서원이다. 이 서원들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서 살아남은 것들로 충남지역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돈암서원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돈암서원의 입지특성은 다음과 같다. 돈암서원이 현재의 위치에 입지하게 된 것은 조선 말인 1880년이다. 돈암서원 주변은 논산저수지 북쪽에 있는 고정산 줄기가 이어지는 중간으로 서원 주변에는 동서남쪽으로 높고 낮은 구릉이 이어지며 북쪽으로는 넓은 들이 형성돼 있다.
들을 가로질러 연산천이 흐르면서 들판을 적셔주고 있어 사원 뒤로 고정산 줄기가 배산을 형성하는 배산임수 형국을 하고 있다.
서원 자체 위치는 거의 평지에 가까운 구릉지에 입지하고 있는데 서원 전면엔 농경지, 농경지 건너서는 낮은 구릉이 있다. 이 구릉은 서원 주변을 감싸는 영역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처럼 주변에 구릉과 농경지 등 비교적 평평한 지역이기 때문에 돈암서원은 같은 유교건축물인 안동도산서원과 비교했을 때 탁트이면서 상당히 시원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느낌은 서원 내부로 들어가면 더 심해진다. 바로 배치의 문제이다.
건물을 배치할 때 영남지방은 건물과 건물이 인접돼 잘 연결되도록 만든다. 가운데 마당을 두는 경우 마당이 너무 크면 집이 허(虛)한 느낌이 든다고 생각했다. 또 허한 느낌이 크면 집의 기운이 외부로 빠져나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건물을 인접시켜 아늑한 느낌으로 건물을 배치했다.
반면 돈암서원은 건물을 붙여 배치하지 않는다. 건물을 한 곳에 모아 배치하는 경우는 있어도 서로 간격을 둔다. 특히 사랑마당의 경우 보통 안마당과 비슷할 정도로 넓게 조성해 최대한 조경을 확보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특징은 유교건축물뿐만 아니라 양반주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두계은농재와 명재고택 등의 사랑마당과 안마당은 비슷한 규모로 조성돼 있다.

◆자연을 안으로 들이는 충남의 건축
자연경관 역시 건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자연경관과 건축물이 어우러지면서 건축물은 자연화되고 자연은 건축 속으로 들어와 동화되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러한 자연관을 갖고 건축문화를 형성했다. 특히 조선시대 유학자들은 인간관과 자연관의 근간을 이루는 사상 중 하나를 천인합일(天人合一) 사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즉 인간은 자연과 천명에 순응하면서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건축문화를 추구했다.
같은 건축문화를 지향하지만 충남의 건축은 다른 지역과는 조금 다르다.
대개 산세가 높아 절경지가 많은 영남지방은 자연환경 속에 건축물을 짓는다. 도산서원이나 병산서원, 소수서원 등 영남의 서원들은 수려한 경관을 배경으로 건축물을 세움으로써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것이 특징이다. 즉 자연경관 속에 자연스럽게 건축물을 동화시키는 것이다.
반면 충남은 영남에 비해 수려한 절경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자연경관을 건축물 안으로 도입하는 방식의 문화를 보인다. 즉 마당에 정원을 가꾸고 건축물 주변에 인위적인 자연경관을 조성하는 방법을 이용하고 있다. 그렇다고 화려한 자연경관을 조성하는 것이 아니라 정원을 인위적으로 조성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사계 김장생의 저택이 그러하고 아산외암마을의 건재고택 역시 자연을 안으로 들이는 건축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이렇게 양 지역의 건축물이 자연을 접하는 다른 방식은 건축물의 선(線)에서도 표현된다.
건축은 선의 모양에 따라 조형적 특징이 표현된다. 벽이나 창호, 지붕의 선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건물의 모양이 다르게 보인다. 특히 지붕선의 경우 건축물의 성격을 분명하게 드러내준다. 이 선을 직선으로 할 경우 차가우면서 세련된 느낌을 주고 곡선으로 하면 부드럽고 친근한 분위기를 낸다.
영남의 유교건축물들은 대부분 선이 직선이다. 울창한 자연경관 속에 건축물이 들어서기 때문에 최대한 세련된 느낌을 줘야 하기 때문이다. 곡선을 이용할 경우 자연경관에 묻힐 수 있다. 또 마당이 넓지 않은 편이어서 직선을 통해 공간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
반면 충남의 건축물은 곡선을 통해 친근한 느낌을 준다. 자연경관을 인위적으로 들여놨기 때문에 인위적인 정원 등과 잘 융화될 수 있도록 최대한 부드러운 느낌을 줘야 하기 때문이다. 충남지역의 이러한 곡선 형태의 건축물은 자연환경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백제의 건축기술을 따온 것이기도 하다. 백제시대의 건축물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것은 현재 남아있는 것이 없지만 고려시대의 수덕사 대웅전이 백제시대의 건축상을 띠고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대웅전은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목조건축물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것에 속하지만 동시대의 가른 건축물과는 조금 다른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자유로운 가람배치, 밀교적 요소, 부드럽고 곡선적인 구조양식, 법식을 벗어난 자유분방한 듯 한 건축 장식 등이 바로 그것으로 백제의 건축기술이 대웅전에 투영됐다고 보는 의견이 다수이다.
이처럼 충남의 건축물은 탁트이고 마당을 넓게 하면서 친근한 느낌을 위해 곡선적인 형태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건축에서도 여유로움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김현호 기자 khh0303@ggilbo.com
참고 ‘충남학의 이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