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을 실감한다. 대청호로 유입되는 물이 많이 줄었다. 강원·경기지역보단 덜 하지만 수위가 많이 낮아졌다. 풀이 자란 땅과 그렇지 않은 땅이 확연히 구분되기 때문에 물이 얼마나 줄었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산기슭 얕았던 곳은 이미 민낯을 드러냈다. 물이 많이 차 있었을 땐 대청호 속 지형이 궁금했는데 실제 물이 조금씩 줄어드는 걸 보니 겁이 난다. 요즘 엘리뇨 현상도 더 심화되고 있다는데 빨리 자연이 치유되길 기원해 본다. 충청의 젖줄 금강, 이 물이 천년만년 영원하길 기대하며 9구간의 길을 나선다. 이 코스는 약 10㎞, 쉬엄쉬엄 5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옥천 군북면 석호리 진걸선착장-청풍정-돌거리고개-국원 삼거리-37번 국도 교각-며느리재-마성산-교동저수지 옆길-정지용 생가로 이어진다.

 

 [ 대청호오백리길 9구간 ] 지용향수길

김옥균의 사랑
정지용의 낭만
맑은바람 되어

 

#.1  아침 햇살 머금은 진걸선착장

해가 떠오르고 산새 지저귐이 활발해진 석호리 진걸선착장,잔잔한 바람에 대청호 물결이 일렁인다. 도시의 시계로는 아직 고요한 아침, 그러나 이곳의 아침은 이미 시작됐다.

모터를 단 작은 고깃배 한 척이 시원하게 물살을 가른다. 선착장으로 다가오는 폼이 제법 의기양양하다. 뭐 좀 잡은 듯. 아니나 다를까 동네 노인장 한 분이 배 바닥 수조에서 열심히 물고기들을 꺼낸다. 쏘가리도 있고 빠가사리로 더 알려진 동자개도 있다. 제법 많다. 대청호의 수질 생태계는 그래도 건강해 보여 다행이다.

남쪽으로 길을 잡는다. 콘크리트 도로를 따라 간다. 콘크리트만 빼면 그래도 자연의 멋이 물씬 풍긴다. 어딜 가나 마을 어귀엔 대나무숲이 있는 법. 이곳도 예외는 아니다. 바람에 대나무 잎 파르르 떨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바람 자체도 시원하지만 이 소리 때문에 시원함이 배가된다. 도로가에 산딸기 몇 송이가 수줍게 매달려 있다. 새콤달콤한 맛이 9구간 시작길에서 힘을 불어넣어준다. 하늘에서 보면 이곳은 제법 긴 반도다. 물길 따라 걷는 맛이 좋다. 호반길의 묘미가 살아있다.

 

#.2  김옥균과 명월의 애틋한 사랑가

진걸선착장에서 대략 2㎞ 지점. 가야금 튕기며 풍류를 즐기기에 딱 좋은 자리, 정자 하나가 세워져 있다. 탁 트인 전경 때문인지 바람까지 맑아 보인다. 그렇다. 정자 현판에 새겨진 그 이름, 청풍정(淸風亭). 아찔한 절벽 위에 세워진 이 정자에서 한 폭의 그림 같은 절경을 감상하며 마음의 평온을 찾는다. 대청댐이 조성되기 전 강이 흐를 땐 이곳 계곡이 깊어 더 운치가 있었을지 모르겠다.

 

청풍정에선 슬프도록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가 전해진다. 갑신정변 3일천하의 주인공 김옥균과 기생 명월의 사랑가다. 조국의 근대화를 염원한 한 사나이, 그 열망은 정변으로 이어졌지만 3일 만에 실패로 끝나고 동지들은 후일을 기약하며 뿔뿔이 흩어졌다. 실의에 빠진 채 피신길에 오른 그는 두메산골 청풍정에 기거하며 고통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런 그의 곁을 지킨 이가 있었으니, 평소 그를 흠모했던 기생 명월이었다. 그와 함께하는 이 시간이 명월에겐 평생의 행복이었겠지만 정치적 야망의 좌절과 그에 따른 생사의 기로에서 그의 마음은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짧지만 달콤한 행복에 점차 암운이 깔리고 있다는 걸 감지해서였을까. 명월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어느 날 그의 눈앞에 놓인 편지 한 장. 다름 아닌 명월이 남긴 것이었다.

천천히 글을 읽어 내려가는 그의 눈가엔 눈물이 흘러내렸다. 명월의 최후를 직감한 듯 말이다. 다급히 그녀를 찾아 뛰쳐나간 그의 손에서 떨어진 편지, 거기엔 이렇게 써 있었다. ‘선생님과 함께 한 이 짧은 시간이 일생에 영화를 누릴 것처럼 행복했지만 저로 말미암아 선생님이 품은 큰 뜻에 누를 끼칠까 몹시 송구합니다.’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진 명월을 수습한 그는 청풍정 바로 옆 바위에 ‘명월암(明月岩)’이라 새기면서 그녀를 가슴에 새겼다. 김옥균과 명월의 사랑가는 맑은 바람이 되어 지금도 청풍정을 맴돈다.

 

#.3 옥천의 진산 교동리 마성산

청풍정에 맴도는 애잔한 러브 스토리를 뒤로하고 다시 길을 잡는다. 호반이 빚어낸 절경을 스치듯 지나치며 돌거리고개에서 옥천 구읍(舊邑)으로 넘어가는 길이다. 한적한 도로를 따라 도착한 성왕로 교각 아래, 여기서부턴 산행이 시작된다. 다랑논을 따라 1㎞를 걸어올라가면 본격적인 산행이다. 녹음이 짙어진 오솔길, 완만한 오르막을 쉬엄쉬엄 15분 정도 걸어올라가면 며느리재(Ⅰ)를 넘게 된다. 군북에서 읍내에 나가려면 이 고개를 반드시 넘어야 했다고 한다.

올 겨울 칼바람을 맞으며 오대리 앞에 웅장하게 펼쳐진 강줄기를 바라봤던 10구간과 겹치는 곳이다. 여부터 며느리재(Ⅱ)까지 대략 150m가 10구간과 겹친다. 6개월 전에 봤던 그 장쾌한 풍경을 다시 눈에 담는다. 우리 일행을 힘들게 했던 이슬봉도 눈에 들어온다. 힘이 들었지만 그래도 가장 멋진 대청호의 장관을 선사했던 곳이다.

두 번째 며느리재에서 마성산 정상으로 향한다. 정상까진 1.6㎞다. 정상으로 향하는 길에 산성(늘티산성) 터를 지난다. 며느리재에서 오르락내리락 능선을 타고 대략 1시간, 숨이 꼴딱 넘어가는 가파른 오르막을 조금 오르면 옥천 읍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교동리 마성산(409m) 정상이다.

정지용의 시비가 이곳이 정지용의 고향임을 대변한다. ‘춘(椿)나무 꽃 내뱉은 듯 붉게 타고 더딘 봄날 반은 기울어 물방아 시름없이 돌아간다….’ 정지용이 쓴 홍춘(紅椿)이라는 시 한 수 읊조리며 숨을 고른다. 식장산·서대산·대성산과 같은 높은 산 품안에 나지막한 구릉이 빼곡히 들어찬 지형이 아름답다. 옥천이란 도시는 마치 커다란 독수리 둥지 안에 살포시 놓인 하얀 알처럼 빛난다.

옥천엔 마성산이 3개다. 이곳 교동리 마성산과 함께 옥천읍 소정리와 군서면 금산리 경계에 용암사를 품고 있는 마성산이 있고 옥천읍 죽향리에도 마성산이 있다. 지명이야 어쨌든 대청호의 푸른 물결과 산세가 어우러지는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은 이곳 교동리 마성산이다.

 

#.4 대한민국의 고향…실개천의 향수

‘육영수 생가 2.6㎞’ 푯말을 따라 하산한다. 먼 산은 점점 아득해지지만 옥천 구읍은 더욱 또렷해진다. 군북과 읍내를 오가는 또 하나의 고개 ‘섯바탱이재’를 지난다. 나무지게(섶)를 지고 가다 한 번 쉬어간다(바탱이)는 뜻이 있다고 한다. 산 아래로 거의 내려올 즈음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교동저수지가 눈에 들어온다. 저수지 옆길로 더 내려오면 짙은 분홍빛 자귀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핀 돌담길을 마주한다. 육영수 생가 뒷담이다. 여기서부터 차례로 조선중기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한 생원과 진사들이 모여 유학을 가르치고 정치를 논하던 옥주사마소, 정지용 생가와 정지용문학관 등 옥천구읍의 명소를 둘러본다.

옥천의 오래된 마을, 말 그대로 구읍(舊邑)은 죽향리와 상·하계리, 문정리, 교동리를 일컫는다. 조선시대 관아와 향교 등이 있던 마을의 중심지였는데 일제 때 옥천 남쪽으로 철길이 생기면서 쇠락했다. 물론 지금에 와선 그 덕에 옛 정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기도 하다. 1988년 정지용의 작품이 해금되고 이동원·김인수가 ‘향수’를 노래해 히트 치면서 부턴 이곳은 아예 정지용 테마마을로 탈바꿈했다. 식당이며 노래방이며 담벼락이며 모두 정지용의 싯구로 넘실댄다.

우리나라 현대시의 시작은 정지용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데 그 이유를 좀 더 자세히 알기 위해선 정지용문학관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아쉽게도 요즘 메르스 때문에 문을 닫았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 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 생가 앞 공원벤치에 앉아 정지용의 어린시절 실개천을 바라보면서 그 유명한 시 ‘향수’를 읊조리며 나의 실개천과 향수를 그리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글=이기준 기자 lkj@ggilbo.com
사진=이승훈·이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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