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통령 공약집 272페이지.
“책임보육, 0~5세 영유아의 보육과 육아는 국가가 책임지겠습니다. 새누리의 약속, 0~2세 영아 보육료 국가 전액 지원 및 양육수당 증액, 양육유형 선택권 보장, 3~5세 누리과정 지원비용 증액 및 중·저소득계층 방과후 비용 소득기반 차등 지원.”
지난 3일 여야가 3000억 원 우회 지원에 합의하면서 어린이집 누리과정을 둘러싼 갈등이 더욱더 심화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시·도교육청의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압박하고 있는 반면 야당과 시·도교육청은 정부와 여당에 책임을 묻고 내년도 예산 편성이 불가능하다며 맞서고 있다. 대전은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 일부를 어린이집에 편성하도록 해 급한 불은 껐지만 내년 보육대란 우려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매년 반복되는 갈등은 무상보육의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대통령 공약부터 그렇다는 것이다.<본보 4일자 1면 등 보도 - 누리예산, 주고도 욕 먹는 정부>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시절인 지난 2012년 보육 및 유아교육을 국가가 완전히 책임지는 책임보육 공약을 내놨다. 이에 따라 3~5세 누리과정을 확대, 2013년부터 0~5세 누리과정을 시행하게 됐다. 시행 당시만 해도 국가와 각 지자체가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일부 지원했지만 올해부턴 완전히 시·도교육청에 부담토록 했다.
문제는 당초 예상대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증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도입 당시 정부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2011년 35조 3000억 원에서 올해 49조 4000억 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며 이에 맞춰 재정계획을 수립했다. 이 과정에서 시·도교육청과의 세부적인 논의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올해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39조 4000억 원에 그쳤다. 예상과 10조 원가량 차이다. 이는 결국 시·도교육청의 부담으로 전이됐다. 올해 전국 교육청의 지방채가 공교롭게도 10조 8540억 원이다. 이는 2012년 2조 769억 원의 5배 수준이다. 내년에는 정부 지원금 3000억 원을 제외하고도 1조 8000억 원이 부족해 지방채를 또 발행해야 하는 처지다.
상황이 이런데 정부는 지난 10월 누리과정 예산을 시·도교육청의 의무지출 경비로 지정했다. 시·도교육청이 의무적으로 편성해야 한다는 의미다. 정부는 불요불급한 사업을 축소한다면 충분히 편성할 수 있다며 시·도교육청을 압박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공약을 내세워 사업을 시작하고 예산 부담은 시·도교육청이 떠맡게 된 꼴이다. 유치원은 교육기관으로 시·도교육감의 지도감독을 받지만 어린이집은 보육시설로 교육청 권한이 없는 구조에서다. 더욱이 현 지방교육재정으론 누리과정 전액을 부담키 어려운 상황. 이에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누리과정 중앙정부 의무지출경비 편성,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내국세 총액의 25.27%로 상향조정, 사회적 논의기구 구성 등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정치논리와 이념을 차치하고 이대로 누리과정을 시·도교육청이 부담한다면 분명 초·중등 교육 등 우리나라 교육 전반에 큰 타격을 입힐 것은 자명하다. 이제는 대안을 찾아야 할 시점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는 이유다. 대안 마련은 원인제공자인 정부의 몫이라는 게 지배적인 여론이다.
김형중 기자 kimhj@gg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