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반도 중남부에 위치한 대전광역시는 수도권과 영·호남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이다. 이러한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대전은 예로부터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고, 전쟁이 반복됐던 삼국시대 때 그 가치는 절정에 이르렀다.
대전은 고구려의 남하노선, 신라의 한강 유역권 진출 교두보, 백제의 수도권 방어 지역과 같은 각국의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었다. 고구려와 신라가 대외진출을 위한 공세적인 시선으로 대전을 바라봤다면 백제는 수도권 방어를 위한 수세적인 성격으로 대전을 보았다.
그리하여 백제왕과 지도층은 대전에 수많은 산성을 만들었고, 현재 대전은 약 50여개의 산성이 있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산성을 보유한 ‘산성의 도시’로 남게 됐다.
따라서, 대전의 백제 산성은 동쪽의 신라군을 대비한 듯 금강수계와 계족·식장산계에 2중 3중으로 건설됐다. 이렇게 세워진 대부분의 산성에서 신라의 군사 요충지 옥천과 금강 상류를 감시할 수 있는 것으로 볼 때 산성의 역할이 신라군의 동태를 감시하고 방어하기 위함임을 알 수 있다.
대전 산성은 백제가 위례성에서 공주로 천도한 뒤 집중적으로 축조되었다. 산성들은 크게 5개의 집단으로 구분이 되는데 금강수계, 계족·식장산계, 보문산계, 갑천수계, 계룡산계가 있다.
백제 산성은 흙과 돌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 복합식 산성이지만, 돌보다 흙을 더 많이 사용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흙성이라하면 비와 눈 등 자연환경 변화에 약할 것 같지만, 백제의 축성방식은 진흙, 모래, 볏짚 등을 함께 압축하여 만들어 마치 벽돌과도 같은 경도를 가지게 된다.
축조방식은 판축식 기법을 사용했다. 이 방식은 토사가 형태를 유지 할 수 있게 나무판으로 그 형태를 만들고 그 안쪽에 점질토와 마사토를 번갈아가며 다져서 성의 중심부분을 만들었다. 그리고 토성의 바깥쪽에 돌을 쌓아 올려 흙이 밀려 내려오는 것을 방지했다.

대부분의 대전 산성도 이와 같은 판축식 기법을 사용한 복합식 산성이다. 또한 백제의 산성을 테미식 산성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백제 산성의 형태가 산봉우리를 성의 중심에 두고 능선을 따라 성벽을 만드는 특유의 모양이 옆에서 보면 테를 맨 모양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말이다.
이러한 백제의 축성기법과 양식은 고려와 조선까지 이어져 한국 산성의 계보가 됐다.
국가사적 또는 시 지정 기념물로 지정이 되어 있는 산성은 동구가 11곳으로 가장 많고, 대덕구 4곳, 유성구 3곳, 서구 2곳, 중구 2곳이 있다. 또한 백제시대 성곽이자 대전시 기념물 제10호로 지정된 보문산성은 성벽 일부 구간에서 배부름 현상이 발생함에 따라 지난해 7월부터 11월까지 4개월간 보수공사에 들어갔다.
보문산성은 보문산에 있는 테미식으로 축조된 석축산성으로 시의 복원·정비 사업에 따라 지난 1990년 3월 발굴조사가 이뤄져 1991년 12월 복원된 바 있다.
김경훈 인턴기자 admin@gg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