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장 자격미달 논란 속
金 “친일인명사전 재평가” 암시
노골적 역사 수정 본격화 조짐
광복회 등 “金 임명 철회” 촉구
광복절 행사 불참 초강수 시사
<속보>=윤석열 대통령이 뉴라이트 역사관 논란에 휩싸인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을 임명한 이후 후폭풍이 계속되면서 오는 15일 제79주년 광복절은 전에 없던 분열로 점철될 조짐이다. 무엇보다 김 관장이 독립기념관에서 친일파 명예회복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며 뉴라이트의 노골적인 역사 수정주의 작업이 본격화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본보 8월 9일자 1면 등 보도>

◆독립기념관에서 친일파 복권?
김 관장이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의 재평가를 암시하며 뉴라이트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일제강점기에 민족 반역, 부일 협력 등 친일반민족행위를 자행한 친일파 한국인 4430명을 선정해 그 목록을 정리한 친일인명사전에 잘못된 기술이 있다고 언급하면서다. 김 관장은 지난 8일 취임식 후 기자 간담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분들 전부를 분석하거나 연구해 볼 기회는 없었지만 몇 분의 사례를 보면 팩트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며 “유족 등의 입장이 있다면 철저하게 재검증해 사실 여부를 밝혀주는 것이 학계나 정부에서 할 일”이라고 말했다. 독립기념관 연구 역량을 역사적·사회적으로 평가가 내려진 친일파 명예회복에 활용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김 관장의 계획은 여러모로 의심가는 지점이 적잖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장 독립기념관에서 친일파를 들여다본다는 전제 자체에 대한 괴리감이 크다. 독립기념관법 제1조는 독립기념관의 역할을 ‘외침(外侵)을 극복(克服)하고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지켜 온 우리 민족의 국난 극복사와 국가 발전사에 관한 자료를 수집·보존·전시·조사·연구함으로써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민의 투철한 민족정신을 북돋우며 올바른 국가관을 정립하는 데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친일인명사전 검증을 고유 업무로 보기 어렵다.
김 관장의 자격 미달도 뚜렷한 한계다. 김 관장은 건국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경희대학교대학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은 역사 전공자다. 그러나 한국근·현대사 전공자는 아니다. 전문성 시비가 나올 게 불 보듯 뻔하다. 김 관장 자신이 뉴라이트가 아니라고 항변하지만 그간의 발언과 기록들은 그를 식민지 근대화론에 기반을 둔 뉴라이트 인사로 지목하고 있는 탓에 이 과정에서 엄정한 역사적 잣대를 들이대기보다 특정 방향으로 유도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우려가 짙다. 순수한 목적보다 다른 의도가 숨어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에서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친일인명사전을 다 보지도 않은 채 오류가 있다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라며 “독립운동 사료를 조사·연구하고 전시하는 게 독립기념관 업무라고 법에 나와 있는데 거기에 충실할 생각은 없이 다른 연구단체 연구 결과에 대해 오류라고 말하는 게 독립기념관장 업무냐”고 일갈했다.
◆무섭게 다가온 뉴라이트
윤 대통령과 김 관장을 향한 반발은 사흘 앞으로 다가온 15일 광복절 경축식의 축소로 연결되는 양상이다. 특히 김 관장을 뉴라이트 인사로 지목한 광복회의 경우 독립운동가 후손을 초청해 오는 14일 열릴 예정이던 윤 대통령 초청 오찬은 물론 경축식도 불참하기로 하는 등 초강수를 들었다. 식민지배를 정당화한 인물이 독립기념관장으로 남아있는 한 그들과 광복의 기쁨을 함께 기념할 수 없다는 것인데 경축식 불참이 현실화되면 1965년 창립 이래 처음있는 일이다. 여기에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김 관장 임명 과정 전반을 확인하기 위해 독립기념관 관장추천위원장을 형사 고발하기로 했다. 광복회는 보도자료를 내고 “대통령실이 일제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1948년 건국절 제정 추진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광복절 경축식 참석은 무의미하다”고 밝혔다.

광복회와 맞물려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3·1독립유공자유족회,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를 포함한 25개 독립운동가 선양 단체로 구성된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도 경축식 불참을 선언했고 정치권 역시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등 야당 중심으로 같은 기류가 흐르는 등 여론은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지난 10일 지역 정치권 인사와 광복회, 민족문제연구소 등은 독립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친일청산 부정과 친일반민족행위자 비호, 자의적 역사해석, 제주 4·3과 광주 5·18에 대한 반역사적 주장을 거듭하며 국론분열을 자행하는 인물 네트워크를 보유한 김 관장이 독립정신을 지키고 널리 알려 국민통합에 기여를 비전으로 제시하는 독립기념관장에 적합하다고 볼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며 “윤석열 정권이 지금이라도 독립기념관장 임명을 철회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며 요구가 수용되지 않을 때는 전면적인 저항운동을 벌여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황운하 조국혁신당 원내대표는 “친일매국분자가 다시는 공직에 앉지 못하도록 끄집어내 그들의 소굴로 보낼 것”이라며 “12일 국회에 김 관장 임명 철회 결의안을 제출하겠다”고 예고했다.
이명박·박근혜정부 시절 전성기를 구가하던 뉴라이트. 뉴라이트는 이 시절 친일독재 미화논란에 휩싸였던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와 국정교과서 사태에 중심에 섰지만 끝내 쓴잔을 마셨다. 이후 자취를 감추는 듯했던 뉴라이트는 유독 윤석열정부 들어 주요 기관 보직에 임명되고 있다. 왜 하필 윤석열정부에서 뉴라이트가 재기의 날개짓을 켜고 있는 걸까, 이 현실을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방 실장은 과거 뉴라이트가 학문에 그쳤던 영역의 한계를 정치로 뻗쳐 이제 자신들의 주장을 정책으로 관철하려는 시도로 본다. 방 실장은 “이명박·박근혜정부 때는 뉴라이트가 스스로 학자를 자임하면서 표현의 자유가 있는데 왜 자신들에겐 사회적인 발언권을 주지 않느냐고 했다가 결국 교학사 교과서는 학교에서 선택받지 못했고, 국정교과서도 실패하면서 자연스럽게 퇴출 수순을 밟았다”며 “그러나 윤석열정부라는 외부 환경 변화를 발판삼아 뉴라이트가 이번엔 학문의 영역을 뛰어넘어 아예 정치로 들어와 권력을 등에 업고 자신들의 지향을 정책화하려 나선 상황인데 우리 사회에 매우 위험한 신호”라고 진단했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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