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언급 없는 尹 경축사 파장
공영방송 KBS ‘日 기미가요’ 방영
정부인사 ‘중일마’ 망언, 논란 키워
여당 대변인 “김좌진, 공산주의자”
노골적 역사왜곡…국민들 분노

▲ 제79주년 광복절인 지난 15일 항일독립선열 선양단체 연합(항단연)이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내 삼의사 묘역에서 개최한 광복절 기념식을 마친 참석자들이 독립기념관장 임명 철회 등을 요구하며 행진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속보>=우리가 79년 전 해방 공간을 기억하고자 애를 쓰는 건 그 속에 과거가 아니라 오늘이 있기 때문이다. 청산하지 못한 과거가 오늘도 여전히 살아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지금 부끄러워해야 할 건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았다는 사실이 아니다. 해방된 나라에서조차 그 잔재와 친일파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친일 잔재 청산에 대한 역사의 평가를 올바로 세우지 못하면 조선총독부 건물을 헐고 또 허물어도, 광복절이 수없이 돌아오고 돌아와도 우리는 진정으로 해방됐다고 말할 수 없다. 잘못됐다는 국민의 질책에도 뉴라이트 등 유사역사학의 깊은 수렁으로 다가서는 윤석열정부 인식에 대한 우려가 끝없는 이유다. <본보 8월 14일자 1면 등 보도>

◆국민 상처에 소금 뿌린 정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광복절이 끝났다. 공영방송인 KBS에서 일본의 ‘기미가요’와 군가가 등장하는 오페라 ‘나비부인’을 방송하며 시작된 15일 윤석열 대통령은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일본의 부적절한 역사 인식에 대해 한 차례의 언급도 않았다. 광복절 경축식은 사상 처음 정부 주관 행사 따로,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에 반발하는 광복회 등 독립운동단체 행사가 따로 열렸다. 국민에겐 참 생경한 광복절의 모습이다.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 강행 논란 이후 윤석열정부 뉴라이트 본색은 현실로 구체화되고 있다. 그 최선봉엔 정부 곳곳에 포진한 뉴라이트 인사들이 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차장도 그중 하나다. 김 차장은 광복절을 기점으로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중꺾마)’을 대적할 신조어 ‘중일마’(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를 만들어냈다. 윤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과의 과거사를 외면했다는 비판을 받자 그가 이를 엄호한답시고 “일본에게 억지로 사과를 받아내는 게 진정한가”라며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이라고 견해를 내놓으면서다. 이 발언이 곧장 구설에 오르자 대통령실은 해명에 나섰는데 오해를 더 키우고 말았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일본은 수십 차례 과거 식민지배에 공식 사과했다”며 “그런 사과에 피로감이 많이 쌓여있고, 한일 과거사 문제는 정부도 의견을 개진하며 풀어가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하며 국민들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

◆하다하다 “김좌진은 공산주의자”

독립기념관장에 뉴라이트 인사를 임명하며 독립운동의 성지와도 같은 충청도 자존심을 흔든 윤석열정부는 곧장 독립운동가 재평가를 통해 이를 아예 흉터로 새길 모양이다. 충남 논산 육군사관학교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논란의 사실상 2탄으로 국방부가 최근 군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에서 그를 비롯해 백범 김구와 백야 김좌진 장군 이름까지 지워버리면서다.

국방부는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 등을 충실히 소개하며 독립군과 광복군의 업적을 인정했다”고 설명하며 급한 불을 끄려 했으나 이번엔 윤희석 국민의힘 대변인이 “김좌진 장군도 홍범도 장군처럼 공산주의와 연결됐을 것”이라며 “당시 독립운동했던 북간도 위주, 위에서 봤을 때는 우리 주변 국가들이 사회주의, 공산주의 본령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쪽하고 연결됐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기름을 부었다. 정부에 이어 여당마저 공산주의자들의 표적이 돼 공산주의자에게 암살을 당한 김좌진 장군의 죽음마저 왜곡하고 나선 셈이다. 김좌진 장군의 손녀 김을동 전 의원은 “할아버지가 공산당원에 암살당했는데 무슨 소리냐”며 “대한독립군 전부가 만주에 계셨는데 그럼 그분들이 전부 다 공산당이냐”고 항의하자 윤 대변인이 “잘못했다”고 사과는 했으나 정부도, 여당도 이념의 잣대로 독립운동을 갈라치기하는 닮은 꼴임을 여과없이 보여준 대목이다.

◆뉴라이트 역사관 “윤봉길도 테러리스트”

2024년, 이명박·박근혜정부 시절 몸집을 키운 뉴라이트 인사들이 윤석열정부의 요직을 장악하고 이들의 핵심 주장을 담은 책과 영화, 담론과 발언이 사회 전면에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사회 전반에 걸쳐 역사 수정주의가 그만큼 노골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뉴라이트 역사관의 핵심은 식민지 근대화론을 기반으로 한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론이다. 이 중심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세워진 1919년을 건국의 시점으로 보는 통설을 뒤집는 이 주장이 공인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대한민국이 1948년 건국됐다는 건 1919년 임정이 없었다는 얘기가 된다. 일본의 식민지배는 합법화되고 김구는 물론 충청인의 긍지인 김좌진 장군, 윤봉길 의사 등의 독립운동과 이를 위한 활동 모두 불법이 되는 건 당연지사다.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 후보자 면접 당시 ‘일제 당시 한국인의 국적은 일본’이라는 답변이 위험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뉴라이트 역사관의 실체는 친일파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독립운동가들을 불법, 테러리스트로 모는 논리인 것이다. 광복이 아닌 건국이 중심이 되는 역사의 흐름에선 친일파도 건국공로자 대접을 받는 세상이 열리는 건 말할 것도 없는 얘기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뉴라이트가 정부의 공식 인사가 돼 건국이 중요하다는 듯이 말들을 하게 되면 공식화가 되는 셈”이라며 “과거 국정교과서를 반대했던 이유도 이것 때문인데 뉴라이트가 정치 권력을 힘 입어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려는 위험한 상황이 됐다”고 진단했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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