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 역사관이 낳은 논란의 연속

임명과정부터 문제 제기됐지만
결국 독립기념관장 자리 올라
잇단 망언으로 국민 분노 키워
광복 80주년 기념사로 정점
정부 침묵 속 퇴진 압박 거세

<속보>=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의 1년은 ‘논란’이라는 단어 하나로 요약된다. 임명은 파행이었고 발언은 망언으로 남았다. 독립운동을 기리고 계승해야 할 성지는 어느새 갈등의 무대로 바뀌었다. 1948년 건국절 옹호, 친일인명사전 재평가, 개관 이후 처음 맞은 광복절 경축식 무산, 그리고 “광복은 연합국의 선물”이라는 발언까지 하나하나가 파문이었고 그 파장은 결국 국민적 불신으로 이어졌다. 금강일보는 김 관장이 1순위 후보로 지목됐던 순간부터 문제를 제기했고 이후 이어진 과정도 상세하게 기록해왔다. 그러나 정부는 외면했다. 절차적 정당성이 무너졌다는 지적에도, 임명 자체가 독립운동 정신과 충돌한다는 경고에도, 정부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결과적으로 예견된 사태는 현실이 됐고 지난 1년은 국민에게 피로와 분노만 남겼다. 지금 남은 질문은 단순하다. 김 관장은 왜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느냐다. 그리고 더 본질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독립운동을 기념하라고 세운 공간을 왜곡과 갈등의 무대로 방치해온 책임, 그 무게를 누가 감당할 것인가. <본보 8월 18일자 6면 등 보도>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독립기념관 제공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독립기념관 제공

◆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임명

2024년 8월 6일 밤 10시 대통령실은 보도자료 한 장으로 당시 김형석 (재)대한민국역사와미래 이사장을 임기 3년의 독립기념관장에 임명한다고 발표했다. 발표 직후부터 거센 반발이 터졌다. 당장 김 관장은 독립운동사 전공자가 아니었다. 학계에서도 김 관장은 뉴라이트 성향 학자로 분류돼 왔다. 특히 김 관장은 “대한민국은 1948년 건국됐다”는 건국절 논리를 옹호하며 대한민국임시정부 법통을 부정하는 취지의 주장을 이어왔다. 이는 헌법 전문에 담긴 독립운동 계승 정신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었다. 논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김 관장은 임명 과정에서 이뤄진 면접에서 “일제강점기 우리 국민의 국적은 일본”이라고 하는가 하면, 한 강연에서는 “8·15는 광복절이 아니다”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독립운동의 성지인 독립기념관장에 이런 인사가 내정됐다는 사실이 충격 그 자체였던 이유다.

무엇보다 김 관장 임명에 가장 먼저 반발한 것은 독립운동가 후손 단체였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임정 역사를 평가절하한 자가 최고점 후보로 추천됐다”며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독립기념관이 있는 충청권의 반발은 당연지사였다. 김 관장의 임명 과정에도 의문이 제기됐다. 임원추천위원회 절차의 무효성이 지적됐지만 국가보훈부는 ‘문제없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그 답변이 오히려 반발을 키웠으나 김 관장 임명은 절차의 정당성마저 담보하지 못한 채 강행됐다.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것이다. 잘못 끼워진 단추는 끝내 옷 전체를 비뚤어지게 만든다. 김 관장의 임명은 처음부터 파국을 향해 굴러가고 있었다.

◆ 취임과 동시에 무너진 정당성

지난해 8월 김 관장 취임식은 예정대로 열리지 못했다. 축하의 자리가 아니라 항의의 무대가 됐기 때문이다. 광복회와 지역 시민단체 회원 수십 명이 행사장을 점거했고 ‘김형석은 물러나라’라는 구호가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결국 행사는 40분 넘게 지연됐다.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김 관장의 자격 자체를 거부한 순간이었다. 김 관장 임명의 정당성을 근본에서 부정한 역사적 장면이다. 김 관장은 “사퇴할 이유가 없다”라며 강경하게 맞섰다. 하지만 그 대응은 불을 끄기보다 불길을 키웠다. 취임식 뒤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김 관장은 “친일인명사전은 오류가 있다”라는 언급으로 곧 친일파 명예회복 시도라는 또 거센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독립기념관을 친일 인물들의 명예회복 무대로 만들려는 것이냐는 의심까지 더해졌다. 취임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맞은 첫 광복절은 결국 더 큰 충격을 남겼다. 개관 이후 처음으로 독립기념관 광복절 경축식이 무산되면서다. 광복회와 독립유공자단체 등은 대통령 초청 행사까지 전례 없이 보이콧했다. 이 때부터 독립운동의 성지였던 독립기념관은 순식간에 역사 왜곡 논란의 진앙지로 뒤바뀌었다. 정당성의 균열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단계에 접어든 셈이었다.

◆ 망언과 저항, 국민적 피로의 확산

광복절 직후 김 관장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전국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해 8월 말 한국작가회의 소속 문인 878명이 성명을 발표하고 “역사 왜곡은 미래세대에 대한 폭력”이라 지적했고 충남 YMCA는 시국선언에 나섰다. 반대 목소리는 문화계, 청년, 종교, 학계 전반으로 번졌다. 그 사이 국민적 피로는 누적됐다. 그럼에도 김 관장은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김 관장은 모든 쓴소리들을 ‘마녀사냥’으로 치부하며 자리를 지켰다. 논란은 일시적 소동이 아니라 장기화된 갈등으로 자리 잡았다. 12·3 비상계엄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되고 들어선 이재명정부에서도 김 관장의 거취가 달라지진 않았다. 지난 6월 권오을 보훈부 장관이 인사청문회에서 “그렇게 반대가 많으면 다시 생각했어야 한다”라고 답하며 사실상 임명의 부적절성을 인정했으나 그게 전부였다.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대전 서구을)이 “독립의 가치는 국민 통합이다. 그러나 김 관장은 상처를 헤집고 소금을 뿌려왔다. 해임 규정이 없어도 대통령이 해임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라고 하며 해임을 언급하기도 했지만 큰 소득은 없었다. 덕분에 김 관장을 향한 정부의 침묵은 개인 논란을 넘어 제도와 권한, 정부의 책임의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 광복 80주년, 끝나지 않은 논란

정점은 얼마 전이었다. 지난 15일 광복 80주년 기념사를 통해 김 관장은 다시 한 번 국민의 울화통을 터뜨리게 했다. 이날 김 관장이 “광복은 연합국 승리로 얻은 선물”이라고 하면서다. 독립운동을 외부 요인으로 축소하는 전형적인 뉴라이트 논리였다. 이후 정치권에선 일단 격앙된 분위기가 흐른다. 민주당은 김 관장의 발언을 망언으로 규정하고 규탄했다. 16일 김병기 원내대표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이 자를 즉시 파면해야 한다. 순국선열을 욕보인 자는 이 땅에 살 자격조차 없다”라고 직격탄을 날렸고 17일 국회 브리핑에선 문금주 원내대변인이 “대한민국의 위대한 역사를 부정하는 인사들은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라고 사퇴를 압박했다. 같은 날 조국혁신당도 논평을 내고 “김형석을 비롯해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에서 버젓이 날뛰고 있는 친일 매국노들의 즉각 사퇴를 촉구한다. 상설특검 수사 요구안을 반드시 통과시켜 뉴 을사오적들을 뿌리째 뽑겠다”라고 단언했다. 여당 대표도 거들었다. 정청래 대표는 1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지금도 빛을 빼앗으려는 역사 쿠데타가 계속된다.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의 ‘광복은 연합군 선물’이란 망언은 참담하다. 어떻게 독립기념관장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우리 민족 피와 희생으로 일군 독립 역사를 부정한다는 말인가”라고 개탄했다.

광복회도 가세했다. 광복회는 보도자료를 내고 “모든 독립운동가를 능멸하고 독립운동 가치를 정면으로 훼손한 발언이다. 즉각 해임과 감사·수사 착수를 요구한다”라고 날을 세웠다. 광복절 전후로 자신의 기념사가 도마에 오르자 김 관장은 이례적으로 반박자료를 내고 해명에 나섰다. 김 관장은 “광복절 기념사 내용은 광복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상반된 시선을 지적하고 국민통합을 강조한 것이다. 일부 언론에서 뒷부분은 모두 빼버린 채 ‘연합국의 승리로 광복이 됐다’는 인용 부분만 발췌해 내용을 왜곡 보도했다”라고 강조했지만 파문을 잠재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논란은 단순한 문장 해석의 차이가 아니라 김 관장의 역사 인식 전체를 겨냥하고 있는 탓이다. 결국 국민이 묻는 질문은 하나로 수렴된다. 독립기념관장으로서 김 관장이 그 자리에 남아 있을 자격이 있느냐는 것이다.

지난해 8월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 독립기념관에서 취임식 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8월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 독립기념관에서 취임식 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더는 미룰 수 없는 결단

김 관장의 임기는 2027년까지다. 하지만 이미 사회적 수용성은 사라졌다. 독립기념관 노조를 비롯해 광복회, 시민사회, 국회까지 사퇴 요구에 합류했다. 김 관장을 둘러싼 사태는 개인의 거취 문제가 아니다. 역사적 정의를 국가가 세울 수 있느냐는 질문이자 시험대다. 사실 김 관장이 스스로 책임을 통감하고 물러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결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난 1년간의 행보에서 보듯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다면 결단은 정부 몫이다. 이재명정부는 대선에서 ‘역사기관 정상화’를 공언했다. 그런 정부가 이 상황에서 침묵하는 건 방치이자 방조다. 해임이든, 파면이든 응당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역사적 정의이자 상식이다. ‘해임 규정이 없어도 대통령이 해임할 수 있다’는 게 대법원 판례라는 박 의원의 조언(?)도 있지 않던가. 광복 80주년이 논란으로 얼룩진 현실을 그대로 둔다면 다가올 세대는 더 큰 불신과 갈등 속에서 100주년을 맞게 될 것이다. 독립기념관은 독립운동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공간이다. 결코 뉴라이트 논리의 실험장이 아니다. 김 관장 퇴진은 역사적 정의를 회복하고 국민 통합의 길을 다시 여는 출발점이다. 정부가 매듭을 지어야 한다. 그것이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하고 국민 신뢰를 되살리는 유일한 길이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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