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호오백리길 4구간 추동 산책(with 60번)

대청호 놀러 가는 건 설렌다. 대청호오백리길 걷는 게 즐겁다. 계절마다 다른 매력으로 우리를 쉬게 한다. 같은 풍경인 듯해도 모퉁이마다 다른 모습으로 유혹한다. 대청호 대전구간 핫플레이스는 명상정원이 있는 추동이다. 명상정원 말고도 추동습지보호구역 ‘전망좋은곳’(바람의 언덕), 대청호반자연수변공원, 대청호자연생태관 등도 발길이 잦다. 자연생태관은 국화축제 하는 가을 말고는 잘 안 갔는데, 최근 '자연생태관이 스마트해졌다'고 해서 가봤다. 기대 이상이었다. 추동에 가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생겼다.

#1. 디지털 실감영상관

오, 잘 만들었네. 감탄사가 먼저 나왔다. 핫플 급상승 예감. 대청호자연생태관 2층 디지털 실감영상관. 입구부터 비밀스러웠다. 안개가 낀 듯 커튼이 쳐진 듯 은밀한 느낌의 통로. ‘대청호 비밀의 호숫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산책로를 거닐며 대청호의 아름다운 사계를 느껴보세요.’ 곧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검은 커튼을 젖히자 빛과 소리가 나를 끌어당겼다.

화려한 디지털 영상으로 대청호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야기한다. 또 대청호와 생태가 조성된 과정을 아침-낮-밤, 하루의 시간으로 표현해 보여준다. 공간 가득 다채로운 빛과 이야기가 이어진다. 여수 어디에선가 봤던 장엄한 파노라마가 몰려온다. 단순히 보는 게 아니다. 공간 속으로 영상 속으로 들어간다. 걸어가면, 발자국 따라 바닥 빛이 열리고 장미꽃이 활짝 핀다.

슬프도록 아름답게 표현한 마을수몰 장면에선 마음 한 켠이 덜컹댔다. 아이들과 같이 간다면 꼭 마을수몰 이야기를 들려주시길. 저 마을이 대청호 아래 있단다. 화려한 장미가 모든 공간을 둘러싸고, 폭포수가 만든 생태가 대청호 이야기를 들려준다. 백문불여일견이다. 직접 가서 보시기를. 아이들이 있다면 필수코스다. 관람료 무료, 관람시간은 09:00~17:30이다. 5시부턴 입장할 수 없다. 매주 월요일과 명절당일엔 휴관.

#2. 아이들과 진심동행

실감영상관이 10분 정도인데 아쉽다면 3층으로 가보자. 미디어체험관과 전망대가 있다. 미디어체험관 하이라이트는 라이브스케치체험이다. 안쪽에 큰 스크린이 있는데 그림들이 움직인다. 내가 그린 그림이 저 화면 안으로 들어간다. 스캔 작업이 있어서 저학년 아이들 혼자 하긴 어렵다. 엄마아빠가 살짝 도와줘야 한다. 순간 말문을 닫고 화면을 바라보는 아이, 잠시 뒤 환호성을 지른다. 저기 저기, 내가 그린 거…. 잊지 못할 아이들의 환한 얼굴. 대박 웃음. 그 웃음 영원히 간직하길. 진심동행.

미디어체험관 하이라이트는 라이브스케치체험.
미디어체험관 하이라이트는 라이브스케치체험.
다정하게 꾸며놓은 전망대.
다정하게 꾸며놓은 전망대.

미디어체험관을 나와서 전망대로 간다. 다정하게 꾸며놨다. 대청호와 자연수변공원이 보인다. 높진 않아서 조망이 끝내주거나 볼 게 많은 건 아니다. 장미 프레임 포토존에서 기념사진 남기기 딱이다. 장미정원에 꽃피는 계절엔 또 다른 뷰가 펼쳐진다. 초등학교도 보인다. 동명초등학교. 여기 올 때마다 생각한다. 대청호가 놀이터인 저 학교 아이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아이들이 언제까지나 행복하길 바란다. 

물 한 모금 마시고 전망대에서 나온다. 무심코 진출입구 앞 엘리베이터 방향으로 내딛다가 다리가 휘청. 높이가 다른 턱이 있다는 걸 깜빡했다. 전망대 들어갈 때도 두리번거리다가 이 턱에 깜짝 놀랐는데…. 높이가 다른 이 턱이 왜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르신들이나 어린 아이들은 헛디뎌서 넘어지거나 다칠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특히 엘리베이터 타려고 서둘러 가다보면 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참고로 이 엘리베이터는 장애인·노약자 전용이다.

나만 그런걸까, 전망대에서 나오다가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 이 엘리베이터는 장애인·노약자 전용이다.
나만 그런걸까, 전망대에서 나오다가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 이 엘리베이터는 장애인·노약자 전용이다.

#3. 대청호와 초록버스

“차 없는 사람은 대청호 가기 너무 힘들어.” 간혹 듣는 얘기. 물론 자동차가 없으면 어디든 가기 불편하다. 대청호는? 꼭 그렇지 않다. 대청호오백리길 대전 구간은 시내버스로도 충분히 다녀올 수 있다. 배차간격이 커서 시간을 잘 맞춰야겠지만 버스가 가는 곳이라는 자체만으로도 편하지 않을까. 더구나 대전 도심에서 멀지도 않다. 60번대 버스나 70번대 초록버스를 타면 동구와 대덕구 대청호반을 언제든 갈 수 있다. 대청호 가는 버스에 대청호 사진이나 ‘대청호 가는 버스’ 시그널을 부분 랩핑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예전에 대전시에 전달하기도 한 제안이다. 보시다시피 아직(?) 이뤄지진 않았다.

대청호자연생태관 가려면 60번이나 61번을 타면 된다. 60번은 대전역 동광장에서, 61번은 대전대 동문 쪽에서 출발하는데 판암동에서 환승하면 편하다. 판암역 버스정류장 주변에 대청호/대청호오백리길 안내하는 게시판이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60번을 기다린다. 60번은 한 시간에 한 대씩 있다. 대전역에서 12시 10분 출발한 차를 탄다. 판암역 12시 35분. 15분 정도 지나자 창 밖으로 대청호가 보이기 시작한다. 오늘도 대청호는 맑다. 이때부터 설레기 시작한다. 그녀를 만나는 곳 100m 전처럼. 가끔씩 이런 내 순정을 안 믿는 사람도 있긴 한데, 믿거나 말거나다. 5분 뒤 대청호자연생태관 정류장이다. 금방이다.

#4. 오늘도 한량처럼

산책을 시작한다. 대청호자연생태관에서 나와 바로 앞 대청호탐방지원센터를 들른다. 습관처럼 구간안내 팸플릿 하나 들고 나설 생각이다. 그런데 문을 안 열었다. 이전준비 때문인지 임시휴관이다. 명상정원 근처에 근사한 탐방지원센터를 짓고 있다. 곧 옮길 것 같다. 현재 탐방지원센터는 10년간 정이 많이 든 곳이다. 들르면 항상 따뜻한 커피나 시원한 음료를 내주시는 친절한 분들이 계신다. 이곳엔 또 내가 찍고 찍힌 사진이 크게 걸려있다. 그래서 더 정겨운 쉼터다. 대청호반자연수변공원 근처 ‘대청호커피 볶는 집’ 이웃커피로스터스에서 커피 한 잔 담아 명상정원으로 길을 밟는다. 

호반 따라 느릿느릿 걷는다. ‘물이 많이 빠졌네. 물새들 신났겠군. 습지보호구역 덱(deck·데크)길 정비는 끝났나? 명상정원은 오늘도 붐비겠지? 물이 줄어서 명상정원 홀로섬 가는 길 이어졌겠네?’ 대청호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하며 걷는다. 20분 지나 명상정원 도착. 비가 올 것처럼 우물쭈물하던 하늘이 개기 시작했다. 호수에 열린 파란 하늘 위로 흰 구름이 걸려있다. 짙은 소나무 그림자가 웰컴 메시지를 날린다. 명상정원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5. 누군가 땀의 결실

대청호오백리길은 대청댐에서 시작한다. 전체 1~21구간 중 대전구간이 1~5구간, 5-1구간, 6구간 일부다. 각 구간마다 OOOO길이란 이름이 있는데 4구간은 호반낭만길이다. 대전구간 대표주자인 4구간은 리아스식 해안처럼 호수를 향해 뻗어나간 반도를 수도 없이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한다. 그래서 호반 정취를 가장 가까이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 중 하나로 꼽힌다.

그중에서도 가장 핫한 곳이 명상정원이다. 10년 전만 해도 ‘슬픈연가 촬영지’ 표지판만 달랑 있었는데 지금은 쉽고 편하게 갈 수 있도록 잘해놨다. 대청호 수위가 상승하면 물에 잠기는 곳이 많았는데 수변 덱로드 덕에 이젠 편하게 갈 수 있다. 대청호오백리길을 꾸준히 정비하고 시설을 보강하는 지자체·대전관광공사 실무진 구슬땀에 박수를 보낸다. 다양한 편의시설도 늘었다. 최근엔 이곳에 신기한 카메라도 설치됐다. 언뜻 망원경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청호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을 수 있는 카메라다. ‘AR 포토존.’ 원하는 배경을 렌즈에 담아 셔터를 누른 뒤 카메라 앞으로 자리를 옮겨 포즈를 취하면 멋진 사진을 얻을 수 있다. 다양한 꿈돌이 이미지도 원하는 곳에 붙여 넣을 수 있다. 사진은 스마트폰으로 즉시 전송받을 수 있다.

#6. 현빈도 왔었던 명상정원

점점 열리는 대청호의 속살. 대청호 데칼코마니 극장이 이어진다. 흐리다 갠 오후의 하늘, 호수 물빛을 만나 산과 나무들의 데칼코마니가 절정으로 치닫는다. 물과 뭍의 경계를 따라 걷는다. 낭만 돋는 이 길의 끝은 바다 소리가 들리는 호숫가 넓은 모래곶이다. 탁 트인 이 공간에선 데칼코마니의 절정을 감상할 수 있고, 바닷가를 걷는 듯한 착각이 든다. 찰랑찰랑 호수 물결은 햇빛을 받고 장관을 연출한다. 여기에 서면 영화 한 장면이 필름처럼 지나간다.

2018년 개봉한 ‘창궐’. 위기의 조선으로 돌아온 강림대군(현빈)은 궁으로 가기 위해 양화진 나루터로 간다. 역병 때문에 삼엄하게 근무를 하던 관군은 현빈 일행과 실랑이를 벌인다. 강림대군 현빈 일행은 배에 올라 한양으로 향한다. 이 장면을 촬영한 곳이 이곳이다. 나무 한 그루 외롭게 서 있는 명상정원의 끝자락은 ‘홀로섬’으로 불리는데 대청호 수위가 높아지면 길이 끊겨 섬이 된다. 얼마 전까지도 갈 수 없는 섬이었는데, 오늘은 열렸다. 詩心 돋는 땅끝에서 그녀 생각을 한다. “바다 소리가 들려.” 언젠가 동행했던 그녀, 휴식같은 친구였던 그녀는 이곳에서 바다 소리를 듣는다고 했다. 난 아직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

명상정원. 드론촬영. 금강일보 DB
명상정원. 드론촬영. 금강일보 DB

#7. 명불허전 바람의 언덕

현빈 배우가 대청호오백리길 온 건 영화 창궐 말고 또 있다. 영화 ‘역린’도 대청호오백리길에서 촬영했다. 정조 현빈은 어둠 속으로 몸을 피한다. 어두운 밤 배를 타고 나서는데…. 그건 명상정원이 아니다. 대청호가 아닌 대청댐 바깥 금강본류 왕버드나무군락지다. 대청호오백리길 21구간이다. 명상정원에서 추동습지보호구역 바람의 언덕으로 가는 길 다른 영화 촬영장소를 만난다. 생뚱맞은 우물 하나. 장동건 배우 주연 영화 ‘7년의 밤’ 마을 우물 장면 촬영한 곳이다. 또 한 곳, 류영은기념재단(메리골드 카페) 뒤편으로 더 걷다보면 추동소한터가 나오는데 그곳은 류승범·고준희 배우 주연 ‘나의 절친 악당들’ 중요 장면을 촬영한 곳 되시겠다.

추동습지보호구역 '전망좋은곳' 앞의 홀로섬.
추동습지보호구역 '전망좋은곳' 앞의 홀로섬.

추동소한터에서 서성이다 언덕 넘어 걷다보면 추동습지보호구역 '전망좋은곳'(바람의 언덕)이다. 명불허전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곳이다. 명상정원처럼 붐비지 않아 진정 명상하고 ‘멍상’하기 좋다. 어떤 분(돌까마귀 이주진 님)은 바람의 언덕이란 지명이 전국에 너무 많으니까 ‘깨달음의 언덕’이라 부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땅끝에 서서 홀로섬을 보고 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모래곶 내려가 걷다보면 우연한 생각에 빠져 날 저물도록 모른다. 해가 저문다. 석양빛이 호수 위에 깔린다.

#8. 추동 가봐야할 또 다른 이유

어둠이 짙어간다. 하나둘 불빛이 켜진다. 동명초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60번, 61번, 71번을 기다린다. 도착시간을 확인하고 남은시간 여유만큼 바로 앞 대청호반자연수변공원 불빛 속으로 들어간다. 신비로운 불빛이 유혹하는 곳이다. 풍차 불빛에 이끌리듯 간다. 풍차 뒤에 근사한 유럽풍 건물들이 비주얼을 뽐내고 있다. 장미정원, 로즈파크다. 장미꽃 피고 조명이 함께 어우러지면 꽤 멋진 시퀀스가 될 듯하다. 장미정원이 대청호와 추동을 찾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겠다. 디지털을 장착한 자연생태관과 장미를 품은 호반수변공원 콘텐츠가 강력해지고 있다. 명상정원·바람의언덕과 더불어 막강 힐링라인 구축 예감이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글·사진=차철호 기자 
ich@kaka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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