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21번 버스)
21번 타면 종점 수락계곡정류장.
짧은 산책도 긴 산행도 힐링의 시간
영혼까지 식히는 계곡의 초록바람과
절로 감탄사 나오는 조망쉼터의 연속
첩첩이 휴식과 위로를 주는 딴 세상,
이곳에 오면 누구나 신선이 된다.
‘대둔산 간다’ 하면 대개 케이블카가 있는 전북 완주 쪽 대둔산을 떠올린다. 기암괴석과 수려한 풍광, 금강구름다리와 아찔한 삼선계단이 완주 권역의 시그니처다. 정상인 마천대까지 오르면 내려가는 반대쪽 길은 충남 논산 권역이다. 논산 권역 초입은 수락계곡길이다.
여름엔 계곡바람과 자연그늘이 만드는 청정 에어컨이고, 가을은 마음까지 빨갛게 물드는 핫플레이스다. 대전 21번 버스를 타면 이곳이 종점이다.
서남부터미널에서 출발하면 가수원동을 지나 대전 서남부 지역과 논산 벌곡의 농촌마을을 지나 수락마을(논산 벌곡면 수락리)에 다다른다. 어르신들의 이야기소리 속에 때론 덜컹이며 평화로운 농촌마을 풍경을 통과한다. 가수원동에서 1시간 정도 달리면 종점에 이르는데, 맨 뒷자리에 앉아 가다보면 초록버스 여행의 진수를 즐길 수 있다.
버스에서 내려 걸으면 수락폭포가 있는 곳까지 덱(deck·데크)길이 이어져 있어서 편하다. 가볍게 수락폭포까지만 산책하듯 갔다와도 좋다. 산행이 목적이라면 마천대(878m)로 가는 코스와 오른쪽 월성봉(650.9m), 바랑산(556.2m) 방향 코스가 있다. 마천대 지나 금산 배티재나 완주 쪽으로 내려오면 대전시내버스 34번을 탈 수 있다.

느릿느릿 걷기
계곡에서 쉬기
산정상의 바람
신선이 되는 시선
#1. 계획 없이 탄 버스
주전부리 간식도 없다. 물도 달랑 한 병뿐. 계획하지 않은 시간, 가수원동에서 21번을 탔다. 다른 20번대 버스와 다르다. 21번 타는 곳은 가수원네거리 근처 정류장이 아니다. 가수원도서관 정류장을 지난다. 버스에서 생각한다. 종점에서 내려 어디까지 얼마큼 갈까. 가볍게 수락폭포까지만 가자. 계곡물소리 들으며 느릿느릿 걷자. 아니야, 조금 더 올라가서 군지구름다리까지만 다녀오자. (출발 땐 그렇게 계획했다.)

버스 종점 앞 근사한 느티나무 앞에서 출발한다. 곧 대둔산도립공원에 들어서면 단풍나무가 인상적이다. 단풍 든 나무들이 심심찮게 맞이한다. 초록이 지배한 소리와 바람을 만난다. 대둔산승전탑 입구를 지나면 본격적인 힐링로드가 시작한다. 덱길이 위-아래로 갈린다. 아래로 길을 잡아 조금만 걷다보면 곧 선녀폭포를 마주한다.
물줄기가 선녀의 하얀 비단치마처럼 흘러서 이름이 선녀폭포다. 그냥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벗어나기 힘든 유혹이다. 그녀들이 발목을 붙든다. 오감이 서늘하다. 심란한 마음까지 달래준다. 물가에 앉아 ‘물멍’에 취한다.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공을 내세우지 않고, 남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임하는 물의 겸손을 생각한다. 반성한다.

#2. 수락폭포와 군지계곡
선녀폭포를 뒤로하고 더 가면 오른쪽 위 고깔처럼 생긴 꼬깔바위를 만난다. ‘바위에 숨어 하늘을 쳐다보는 사람의 얼굴이 보인다’는데…. 잘 모르겠다. 계곡 물소리는 쉬지 않고 귀를 적신다. 초록으로 둘러싸인 덱길의 끝, 수락계곡의 메인 폭포인 수락폭포가 기다리고 있다. 바로 위 계단을 밟으면 작은 폭포가 나온다. 물소리 귀에 담고 물 한 모금. 다부지게 시작하는 계단길을 준비한다.
이정표는 ↖마천대 2.1㎞ ↖군지구름다리 0.3㎞, ←낙조대 1.9㎞, →수락주차장 1.7㎞를 가리킨다. 마천대 방향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를수록 기묘하게 생긴 바위들과 소나무가 맞이한다. 머털도사가 뿅, 하고 나타날 것 같다. 호흡 고르면서 뒤를 돌아보면 멋진 산 풍경이 시선을 붙든다. 오늘도 구름이 참 좋다.
헉헉대며 올라가다 보니 저 아래 군지구름다리가 보인다. 구름다리 규모는 작다. 그래도 구름다리는 늘 신난다. 걷다보니 혼자여도 출렁인다. 구름다리 중간에 멈춰서 바람을 맞으며 다리 앞 풍경에 젖는다.

군지계곡. 지금은 낙석위험 때문에 출입이 통제된 곳이다. 수직절벽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동학혁명 때 관군에게 쫓기던 동학군이 오도가도 못하고 전멸했다는 가슴아픈 이야기가 전해온다. 그래서 ‘군지옥골’이라고 불렸고, 군지골 또는 군지계곡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통제되기 전엔 군지계곡에서 사다리처럼 가파른 220층계를 오른 뒤 1시간쯤 등산해 대둔산 정상인 마천대에 이르렀다고 한다.
구름다리의 협곡 바람을 만끽한 후 조망쉼터로 향한다. 조망쉼터는 군지구름다리와 멀지 않다. 계단이 끝나는 지점 가까이에 바위로 감춰진 공간이 있다. 수락계곡에 올 때면 항상 여기서 쉬었다 간다. 너럭바위에 앉아 바라보면 첩첩이 산들과 하늘이 아이맥스 영화관이다. 마천대 쪽 봉우리 위의 하늘과 구름도 작품이다. 그 앞의 기묘한 나무 한 그루, 시원한 바람을 불러 모은다.
마천대까지 2㎞. 출발점으로 돌아갈까 하다가 위쪽으로 길을 밟는다. 느리게 느리게 올라간다. 금세 이정표가 또 나온다. ←2.1㎞ 수락주차장, 마천대 →1.2㎞. 30여 분 뒤 긴 계단을 오른다. 마지막 계단을 탁 밟는다. 조망이 열린 바위 쉼터가 하이파이브 한다. 광활한 풍경이 안아준다. 휴~.



긴 숨 내쉬며 천천히 뷰를 즐긴다. 대둔산 논산권역에서 낙조대 못지 않은 웅장한 뷰 포인트다. 위 사진, 여기서 찍었다. 누구나 신선이 된다.
#3. 마천대, 그리고 선택의 순간
20분 남짓 올랐을까. 반가운 이정표가 보인다. ‘해발 860m, 정상까지 250m 남았습니다.’ 곧 마천대와 대둔산 남쪽 풍경이 장엄하게 열린다. 마천대로 가기 전 능선에 서서 남쪽 뷰를 즐감한다. 케이블카와 삼선계단, 금강구름다리가 눈에 들어온다. 케이블카가 오고가고, 금강구름다리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관광객들이 조그맣게 보인다. 삼선계단을 오르는 사람들도 보인다.




마천대 개척탑. 수묵화 파노라마를 눈에 담는다. 뒤돌아서서 북쪽 뷰, 암벽 너머 멀리 도시가 보인다. 대전인가, 줌으로 당겨서 본다. 뿌연 시야가 방해한다. 수통골 근처 학하동 아파트와 중고차단지가 살짝 보인다. 시선을 오른쪽으로 옮기면 한창 아파트 짓고 있는 도안신도시가 보인다. 왼쪽 논산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큰 저수지가 먼저 눈에 띈다. 긴 다리도 보인다. 논산 탑정호다.
물 한 모금 마시고, 선택의 순간이다. 어디로 갈 것인가.
① 금강구름다리 지나 완주 쪽으로 내려갈 것이냐 ② 케이블카를 탈까? ③ 대전 가는 34번 버스 타기 좋은 금산땅 배티재로 하산하느냐 ④ 낙조대 들렀다가 출발점 수락리로 내려가느냐. 아니면 생소한 돛대봉 암릉 코스를 가볼까.
#4. 어디로 내려갈까
③번과 ④번 사이에서 갈등한다. 한 번도 못 가본 ‘생애대’ 풍광 좋다는데 들렀다가 배티재로 내려갈까, 하다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를 보고 낙조대로 향한다. 석양이 다가오긴 하는데, 뿌연 미세먼지가 방해한다. 아쉽다. 그래도 낙조대 가는 길은 눈이 호강한다. 이번엔 동쪽 뷰다. 기암괴석과 첩첩 산, 기묘하게 생긴 소나무가 눈길을 끈다. 마천대에서 30여 분, 낙조대 다 왔다는 이정표가 나온다. 859m 낙조대다.

뿌옇다. 대전 쪽도, 논산 쪽도 명쾌하게 보이지 않는다. 줌을 당겨도 희미하다. 낙조(落照)를 기다려볼까 싶어 20~30분 머문다. 기다리며 180도 파노라마 뷰를 감탄사에 싣는다. 논산-계룡-대전-금산의 산그리메를 눈에 담는다. 역광의 풍경은 아쉬운 대로 남기고 오른쪽 산 능선의 곡선을 본다. 아름답다. 환상적이다. 소나무 유려한 곡선 자락, 말 그대로 수묵화 한 폭이다. 저기 근사한 바위와 소나무가 있는 곳이 생애대일까.
서쪽하늘이 석양빛으로 살짝 물들었다. 선명한 노을빛이었으면 좋았을텐데, 아쉬움 잔뜩 낙조대에 남기고 출발점인 수락리로 향한다. 도립공원 초입으로 간다.

#5. 내려갈 때 더 겸손하라
내리막길이 호락호락하진 않다. 금세 내려갈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다. 그만큼 뷰 파노라마도 끝나지 않았다. 낙조대에서 10여 분, 바위 사잇길을 통과하면 웅장한 포스의 바위가 맞이한다. 절로 감탄사 나오는 바위. 앞뒤에서 보며 감탄한다. 한참 내려온 거 같은데 이정표는 낙조대 500m 왔다고 말해준다. 수락주차장 ←2.3㎞를 가리킨다. 내려올수록 수락저수지와 수락마을이 크게 보인다. 토닥토닥 위로하는 것 같다. 중간중간 계단 조망쉼터에 서서 내려다본다. 길게 호흡한다.
하산길이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덥던 몸도 식어간다. 바깥세상은 더운데 이곳은 다른 세상이다. 대전으로 가는 21번 버스는 20시 15분 출발. 30여 분 남았다. 마을 앞 수락저수지 수변길을 걷는다. 덱 길을 잘 만들어놔서 걷기도 편하다. 어둠은 깊어지고 편안한 오디오가 낭만 수위 올리며 들려온다. 소쩍새 소리, 개구리 소리가 지배한다.
다시 버스정류장. 대전으로 간다. 1시간여 초록버스 여정. 대전 시외구간인 수락리는 버스요금이 950원 더 붙는다. 요금 더 붙긴 해도 이 정도면 안분지족 호강 아닐까.
글·사진=차철호 기자 ich@kakao.com
속 시끄러울 땐 초록버스를 탄다. 도심을 벗어나 달리는 외곽 시내버스는 위로를 준다. 버스 안 어르신들이 주고받는 이야기 소리도 정겹고 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도 다정하다. 초록버스는 대청호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장태산휴양림, 장동산림욕장, 성북동산림욕장, 국립대전숲체원에도 데려가준다. 이사동 한옥마을 ‘대전별서’ 가는 길도 안내하고 갑천 상류와 대전둘레산길의 트레킹코스 길잡이 역할도 한다. 힐링버스라 부르기에 마침맞다. 금강일보는 2025 연중기획 [대전 초록버스 여행]을 연재한다. 대전 시민들에겐 휴식의 시내버스 노선을, 다른 지역에서 온 여행자들에겐 대전여행 힐링코스를 소개한다. 당신의 마음을 안아줄 것이다. 마음이 흔들릴 땐 초록버스를 타 보시라.
☞ 대전 초록버스 여행
EP1. 노루벌길엔 ○○이 있다 (with 25번)
EP2. 두메마을과 찬샘마을 (with 71번)
EP3. 대전별서에서 하룻밤 (with 52번)
EP4. 원정동 두계천길 걷기 (with 23번)
EP5. 대청호 추동 가는 이유 (with 60번)
EP6. 산디마을과 계족산 (with 74번)
EP7. 대청호, 벚꽃의 기억 (with 63번)
EP8. 방동 윤슬거리의 멋 (with 41번)
EP9. 대청호반 비밀의 숲 (with 72번)
EP10. 장태산의 5월 (with 20, 22번)
EP11. 수락계곡과 대둔산 (with 21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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