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족산 가는 또 하나의 방법

새로운 길은 아니다. 71번 타고 이현동 정류장에서 내리면 계족산으로 가는 숲길을 만난다. 마을 전체가 미술관 같은 이현동에서 노니다가 가도 좋고, 버스에서 내려 바로 산책 같은 산행을 해도 좋다. 계족산 황톳길 가는 길은 동서남북 아주 많은 경로가 있다. 시내버스 타고 출발 원점이 아닌 다른 날머리로 내려오는 코스도 많다. 장동산림욕장 바로 앞에 서는 74번도 있고, 시내권에서 버스 내려 오르기도 하고, 60번대 초록버스 타고 대청호가 보이는 추동에서 오르는 길도 있다. 한번쯤은 자가용 집에 모셔두고 시내버스 타고 가보시라. 원점회귀 하지 않는 발걸음이 그대를 자유케 하리라. 

    [대전 초록버스 여행] EP14. with 71번    
이현동~황톳길~봉황정~회덕정수장

71번은 동구 비룡동(동신과학고)과 대덕구 용호동종점을 오간다. 금강과 대청호를 품고 달린다. 노선 자체가 유람이다. 이번 유람의 시작은 신탄진역 정류장. 용호동종점에서 11시 35분 출발하는 71번을 탄다. 11시 40분쯤 승차, 금강 물길 따라 대청댐 방면으로 달리다가 보조댐/삼정취수장 지나 추동 방면 추동길로 접어든다. 버스 창밖에서 쾌청한 호수빛이 전해온다. 

이현동 정류장

신탄진역 정류장에서 출발한 지 20분, 이현동 정류장에서 내린다. 인도 없는 도로를 5분 정도 걸어가면 오른쪽에 나있는 산길을 안내하는 이정표를 만난다. ←0.3㎞ 이현동, 대청호 8.6㎞→,  장동산림욕장 3.4㎞↗ .  장동누리길 안내판도 친절하다. 물 한 모금 머금고 막 출발하려는 찰나, 길 건너편 커다란 나무 한 그루. 이현동 느티나무다. 1990년에 보호수로 지정됐다. 수령 대략 260년. ‘만렙’급 포스다. 그 아래엔 이현동 유래비.

임도, 숲길에 든다. 완만한 오르막. 호위하듯 줄지어 서있는 메타세쿼이아가 인상적이다. 이 길을 처음 안 것은 10년도 더 됐다. 자전거 타고 계족산 올랐다가 홀린 듯 접어들어 내려온 곳이 여기다.  황톳길 만나는 길까지 메타세쿼이아가 호위한다.  중간중간 ‘빨래판’이라 부르는 시멘트길이 나오기도 하지만 대부분 걷기 좋은 숲길이다. 호젓한 길, 혼자 걷는다.

걷다보니 황톳길

15분.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안 걸렸다. 황톳길과 만나는 길. 이곳도 인적이 드문 곳이다. 올라온 임도와 황톳길이 만나는 이 길은 사계절 묘한 매력을 뽐낸다. 어떤 날은 신비로움마저 든다. 오래 전 뭔가에 홀린 듯 갔던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사진 한 장 건져보려고 꽤 긴 틈을 머문다. 나만 그런지 모르지만, 사진 결과물보다 찍는 과정이 더 힐링이다. 공간적 배경에 감탄하고 찍으면서 흡족해하고 즐거워한다. 그 과정을 거쳐 찍은 여러 장 사진 중에 가장 낫다고 고른 것이 아래 사진이다.

하체튼튼 만사형통

‘튼튼한 하체 득템!’ 황톳길에 올라타자마자 고래 한 마리가 메시지를 전한다. “몸이 답”이라고 늘 외치는 조웅래 선양소주 회장의 메시지가 읽힌다. 맞다. 튼튼한 하체는 곧 만사형통이다.

계족산 황톳길은 대전이 가진 보물 중의 보물이다. 타 지역 사람들이 대전 사람들을 부러워 할 만하다. 이날도 그랬다. 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다른 일행의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이렇게 좋잖아! 서울에도 산에 이런 황톳길 해놓으면 얼마나 좋아. 돈 많은 부자들 배워야 해. 저 양반(조웅래 회장) 사업도 번창하면 좋겠네. 대전 사람들은 좋겠네.”

황톳길은 오늘도 ‘열일’ 하고 있다.  평일인데도 꽤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다. 여기저기서 황톳길 예찬이 이어진다. 외지인들의 부러움의 감탄사가 잇따른다. 촉촉한 황톳길이 자아내는 행복호르몬과 숲이 주는 피톤치드가 만나 희열을 만든다. 

계족산성 서문터 올라가는 계단 앞 쉼터에 닿았다. 서문터로 향하는 계단은 여전히 폐쇄중이다. 올 연말까지 정비공사를 마친다고 했었는데, 1년 연장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보인다. 허탈하다. 정비구간이 예상보다 커져 공사기간을 연장한다는 소식. 오호통재라,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된다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또 1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구나. 문화유산 복원과 안전을 위한 거라니 기다릴 수밖에. 오늘은 산성 남문터 쪽도 가지 않고 임도삼거리로 직진한다. 봉황정으로 가기 위한 발걸음이다. 

봉황정 가는 이유

임도삼거리다. 선택의 갈등. 봉황정으로 갈 것인가, 산디마을로 가는 메타세쿼이아 숲길을 걸을 것인가. 아니면 봉황정 갔다가 산디마을 가는 길로 갈아탈까. 봉황정 방향 산길을 밟는다.

최근 몇 해 동안 계족산 오면 봉황정은 거의 찾지 않았다. 조망이 별로였다. 나무들이 많이 자라서 쉽사리 뷰를 허락하지 않았다. 계족산성 갔다가 대청호 쪽으로 내려가는 날이 많았던 이유다. 그런데 최근 지인이 보여준 한 장의 사진. 어허라, 여긴 어디? 도심이 열린 파노라마 뷰였다. 가야겠다, 마음 먹었다.

봉황정을 택한 이유는 또 있다. ‘대전 5대 명산 정상석.’ 5대 명산은 국가숲길 대전둘레산길의 근간이 되는 각 구별 대표 산이다. 동구 식장산(587m), 중구 보문산(457m), 서구 구봉산(263m), 유성구 금수봉(530m), 대덕구 계족산(424m)이다. 초록버스 여행을 통해 만났던 보문산과 금수봉 정상석에 이어 세 번째다.

임도삼거리에서 20여 분 올라 계족산 정상에 올랐다. 정상 뷰는 거의 없다. 산성 쪽 뷰만 살짝 열려있다. 산성 뷰도 나쁘진 않다. 남문터부터 쭉 이어진 라인이 우아하다. 그 옆으로 첩첩산 아우라도 근사하다. 조금만 더 열리면 좋을텐데. 아쉬움 접고 뒤돌아서서 정상석을 영접한다. 예전부터 있던 정상비석 바로 옆에 있다. 인증샷 서너 장 찍고 봉황정으로 간다.

봉황정에 가면

생각해보니 몇 해 전 대전둘레산길 전 구간 유람할 때 왔던 게 봉황정 마지막이었다. 그날도 그랬다. 나무들이 가리고 미세먼지도 많았던 ‘곰탕’ 뷰여서 봉황정 뷰에 대한 기대가 사라졌었다. 뷰가 열렸다니, 기대감 키우며 봉황정 계단을 밟는다.

오, 대전 도심이 확 열렸다. 왼쪽 동구부터 중구, 서구, 유성구, 대덕구 곳곳이 눈에 들어온다. 예전보다 훨씬 잘 보인다. 파노라마를 즐감한다. 여기저기 아는 곳을 짚어본다. 저 멀리 서쪽, 남쪽 대전둘레산길 라인도 헤아린다. 우산봉부터 신선봉, 갑하산, 도덕봉, 금수봉, 빈계산, 산장산, 구봉산, 보문산, 만인산, 식장산까지…. 수려한 8~12구간 산들이 눈에 들어온다.  

똑딱이 카메라로 줌도 당겨본다. 갑천의 여러 다리들과 천변고속화도로가 선명하다. 구름의 움직임도 유려하다. 봉황정 석양은 한 번도 못 봤는데, 그  빛도 눈부시리라. 석양도 보고 싶고 야경도 보고 싶다. 조만간 다시 오리라 혼자만의 약속을 한다. 야간산행은 잘 하지 않는데 지인 몇몇 꼬드겨서 와야겠다. 

내려가는 길

결국 선택을 했다. 산디마을 가는 메타세쿼이아 숲길로 가지 않고 봉황정에서 바로 아래쪽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죽림정사 방향으로 내려가는 경사가 급한 길이다. 이 길도 오랜만이다. 대덕구 장동에서 태어나고 자란 박 모 씨가 계족산 오를 때 이 길도 알아야 한다고 했던 그 길. ‘짧고 굵게’ 오르내릴 수 있다고 한 길. 그만큼 급경사다. 웬만하면, 권하지 않는다. 

금방이다. 봉황정에서 20여 분 내려오니 임도 시작점이다. ←0.8㎞ 봉화정, ↖0.4㎞ 죽림정사, 임도삼거리 →3.7㎞. 이정표가 기다리고 있다. 여기 오면 떠오르는 기억, 자전거 끌고(타지 않고 끌고) 빨래판 올라 임도로 갔던 오래 전 회상. 아주 힘들어 했던 저질 체력의 기억이다. 그래도 좋았던 추억이다. 길을 따라 회덕정수장 쪽으로 내려간다. 예전과 많이 달라진 모습도 보인다. 오래 전부터 운영했던 식당들은 거의 폐업 수준인 듯 보였고 대신 새로 생긴 카페와 대형식당이 성업중이었다.

날머리. 정수장정류장 앞. 건너편에 대한통운이 있고, 대한통운 정류장에서 213번 타고 집으로 간다.
날머리. 정수장 정류장 앞. 건너편에 대한통운이 있고, 대한통운 정류장에서 213번 타고 집으로 간다.

조금 더 내려오면 회덕정수장이 나오고 경부고속도로 위를 걷는 다리가 나온다. 곧 도로와 만나는 길. 그 앞엔 신탄진 방향 정수장 정류장이 있다. 길 건너 대한통운 정류장으로 213번 타러 가는 길, 오늘 걸어온 경로 어플을 열어본다. 많이 걷지 않은 것 같은데 9㎞가 넘었다. 아무래도 등산이라기보다 임도와 황톳길 편안한 길을 산책하듯 걸어서 그런 듯하다.

들머리 메타세쿼이아길도 좋았고 명불허전 황톳길도 좋았다. 오늘도 완벽한 소풍이었다. 가끔은 자가용 모셔두고 시내버스 타고 여행을 즐겨보시라. 진정한 자유를 느끼시리라.  

글·사진=차철호 기자

속 시끄러울 땐 초록버스를 탄다. 도심을 벗어나 달리는 외곽 시내버스는 위로를 준다. 버스 안 어르신들이 주고받는 이야기 소리도 정겹고 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도 다정하다. 초록버스는 대청호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장태산휴양림, 장동산림욕장, 성북동산림욕장, 국립대전숲체원에도 데려가준다. 이사동 한옥마을 ‘대전별서’ 가는 길도 안내하고 갑천 상류와 대전둘레산길의 트레킹코스 길잡이 역할도 한다. 힐링버스라 부르기에 마침맞다. 금강일보는 2025 연중기획 [대전 초록버스 여행]을 연재한다. 대전 시민들에겐 휴식의 시내버스 노선을, 다른 지역에서 온 여행자들에겐 대전여행 힐링코스를 소개한다. 당신의 마음을 안아줄 것이다. 마음이 흔들릴 땐 초록버스를 타 보시라.

EP1. 노루벌길엔 ○○이 있다 (with 25번)
EP2. 두메마을과 찬샘마을 (with 71번) 
EP3. 대전별서에서 하룻밤 (with 52번)
EP4. 원정동 두계천길 걷기 (with 23번)
EP5. 대청호 추동 가는 이유 (with 60번)
EP6. 산디마을과 계족산 (with 74번)
EP7. 대청호, 벚꽃의 기억 (with 63번)
EP8. 방동 윤슬거리의 멋 (with 41번)
EP9. 대청호반 비밀의 숲 (with 72번)
EP10. 장태산의 5월 (with 20, 22번)
EP11. 수락계곡과 대둔산 (with 21번)
EP12. 수통골 계곡 탁족 (with 41번)
EP13. 치유의숲과 보문산 (with 33번)
EP14. 이현동에서 계족산 (with 71번)

#원포인트 1. 노루벌적십자생태원
#원포인트 2. 비오는 날 대청정  

그리고 사진들.

버스 내림. 계족산 올라가는 길까지 5분 동안 인도가 없다. 
버스 내림. 계족산 올라가는 길까지 5분 동안 인도가 없다. 
오른쪽 계족산 올라가는 길. 건너편 왼쪽에 이현동 보호수. 260년 넘은.
오른쪽 계족산 올라가는 길. 건너편 왼쪽에 이현동 보호수. 260년 넘은.
친절하게 잘 나와있다. 다음엔 장동으로 가는 길을 걸어봐야겠다.
친절하게 잘 나와있다. 다음엔 장동으로 가는 길을 걸어봐야겠다.
올라가는 임도. 메타세쿼이아 호위가 계속된다.
올라가는 임도. 메타세쿼이아 호위가 계속된다.
'빨래판'이라고도 부르는 바닥.
'빨래판'이라고도 부르는 바닥.
이 길도 아름다웠다.
이 길도 아름다웠다.
15분 숲길을 걸으면 황톳길과 만난다.
15분 숲길을 걸으면 황톳길과 만난다.
황톳길.
황톳길.
펀펀하다. 대전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타지에서 오신 분들.
펀펀하다. 대전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타지에서 오신 분들.
계족산성 서문터 올라가는 계단 앞. 
계족산성 서문터 올라가는 계단 앞. 
계족산 정상에서 동쪽 계족산성을 바라보면.
계족산 정상에서 동쪽 계족산성을 바라보면.
계족산성과 첩첩 산들이 수묵화를 만든다.
계족산성과 첩첩 산들이 수묵화를 만든다.
봉황정에서 내려다 본 대전 도심.
봉황정에서 내려다 본 대전 도심.
내려가는 길에 만난 대덕구 모습. 머지않아 풍경이 또 바뀌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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