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언제나 영감을 준다. 자연을 그리워하는 사람의 발길이 고스란히 길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길은 언제나 인생의 희로애락을 노래한다. 시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그 길에 서서 그 길이 소곤대는 노래에 귀 기울이면 과거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며 시간이 멈춘 듯 전혀 새로운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선으로 연결된 길 위엔 수많은 점들이 있다. 오랜 시간, 있다가 없어졌다 다시 생겨나는 발자취들이다. 이 역사의 흔적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영감에 사로잡히는 마법에 빠져든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순수한 마음에 켜켜이 쌓인 먼지를 털어낼 때라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대청호 오백리길에 서 보라.

수많은 지천들이 모여 146㎞ 금강 본류의 시발점이 되는 대청호. 때론 춤추듯 피어난 물안개가 몽환적인 풍경을 자아내고 때론 하늘빛을 그대로 담아 최고의 ‘맑음’을 선사한다. 또 때론 자신을 품은 산과 어우러져 ‘자연’이 무엇인지 한 장의 이미지로 명쾌하게 정의해 주면서 휴식을 권한다.

대청호와 산의 어울림은 길을 만들었다. 산이 호수가 되고 호수가 산이 되는 수많은 점들이 모여 대청호 오백리길이 형성됐다. 시화처럼 펼쳐진 대청호반의 파노라마를 두르고 또 둘러 200㎞를 잇는 아름다운 길이다. 여기엔 호수와 갈대의 앙상블이 있고 석양에 물든 수채화가 있다. 뜻하지 않게 섬이 된 나지막한 산봉우리도 있고 생태습지와 같은 생물다양성의 보고(寶庫)도 있다. 지금은 밑둥이 물에 잠겼지만 애초 ‘이 산의 아름다움은 마치 금강산을 축소해 놓은 듯 하다’며 우암 선생이 ‘소금강’으로 찬양한 ‘부소담악’도 있다. 지자요수 인자요산(智者樂水 仁者樂山)을 두루 섭렵할 기회가 이곳에 있고 그래서 이곳은 항상 지혜롭고 어진 사람의 향기로 가득하다. 대청호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간직한 이야기보따리도 풍성하다.

지친 일상생활에서 잠시 로그아웃(log out) 한다. 천천히 호반 길을 걸으며 느림의 미학에 빠져본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연과 하나가 되는 순간, 힐링(healing·치유)을 느낀다. 저절로 발길이 멈춰지는 산과 호수의 어울림 앞에서 자연의 경이로움을 만끽한다. 이 모든 순간의 문을 열 열쇠를 찾기 위해 대청호 오백리길에 들어선다. 대청호 오백리길 21개 구간을 빠짐없이 둘러보는 설렘 가득한 여정을 이제 시작한다.  이기준 기자 lkj@ggilbo.com 

 

0. 들머리 (프롤로그) ; 1년 여정의 시작
1. 1구간 (두메마을길) : 길 위의 호수
2. 2구간 (찬샘마을길) : 백제 눈물의 수묵화
3. 3구간 (호반열녀길) : 절경이 들려주는 옛 이야기
4. 10구간 (며느리눈물길) : 금강, 그 광야
5. 17구간 (사향길) : 물결, 그 눈물
6. 13구간 (한반도길) : 반전을 꿈꾸는가
7. 4구간 (호반낭만길) : 대청호길 대표주자
8. 5구간 (백골산성낭만길) : 대전, 다도해를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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