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는 바뀌었어도 옛 선조들의 생활지혜 그대로

기지시 줄다리기 민속축제를 홍보하기 위해 시민들이 게릴라 줄다리기 행사에 참여하며 흥겨운 체험을 하고 있다. 금강일보 DB
어떠한 집단이든 특정 성격을 보인다. 가족마다 다른 분위기가 있고 회사마다도 특유의 분위기가 풍긴다. 지역 역시 다른 지역과는 차별화되는 분위기, 즉 풍속이 존재한다. 이러한 풍속은 지역색이라고도 불리고 이는 지역의 특성이 된다.

예로부터 충남은 지리적으로 국토의 중앙에 있고 완만한 산세와 강을 갖고 있으면서 평야지대가 발달해 살기 좋은 땅이라고 평가받았다. 이 때문에 큰 자연재해가 발생하지 않고 주민들의 품성도 착하고 온순하며 느리기로 소문났다. 이러한 지역색은 어떻게 생겨나게 됐는지 살펴본다.

◆경기지역과 비슷한 충남 북부지역의 세시풍속
충남지역의 세시풍속은 자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충남의 영산이라 불리는 계룡산과 충남의 젖줄 금강, 여기에 서해안을 끼고 있는 데다 평야도 군데군데 있어 살기 좋은 곳이라 칭해져 여유로움이라는 이미지가 생겼다.

자연환경뿐 아니라 인접한 다른 지역, 즉 경기지역과 전북지역, 충북지역과의 관계 및 연계성에서도 도출되는 성향도 보이고 있다.

충남의 천안, 충북의 진천, 경기 안성지역은 서로 지리적으로 근거리에 있지만 지형적으로는 금북정맥 등 교류 장애가 될 수 있는 산과 산맥이 가로막고 있어 이에 따른 풍속상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경기 안성지역의 세시풍속은 경기 남부지역의 전형을 보여주지만 한편으로는 교통 중심지에 있어 안성읍 주변에는 천안 등 충남의 풍속이 보인다.

안성 동쪽의 옛 죽산읍 주변에는 진천과 음성, 그리고 여주 등 충북지역과 경기 동부지역의 풍속이 함께 나타난다. 산간지대가 많은 충북의 경우 지형 특징을 반영하듯 마을마다 산신제가 전역에 걸쳐 존재한다. 명칭은 산제, 동산제, 산고사, 천제사 등 다양하나 산신제가 가장 일반적이다.

충남의 북쪽이면서 교통의 중심지인 천안은 인접한 진천에 비하면 지형이 비교적 평탄하고 동쪽보다는 서쪽, 그리고 남북축으로 특히 남쪽 지역과의 연계성이 강하다. 이 때문에 북쪽에 위치한 안성보다는 충남 대부분의 지역처럼 가내 평안을 위해 안택도 하고 정월떡도 한다. 안택고사는 충남 일부지역에서 지신제라고 칭하고 다른 지역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지만 내용은 거의 같다.

천안이 충남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10월에 하는 안택의 비중이 크고 정월떡보다는 갈떡(가을떡)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이는 경기지역의 그것과 흡사한 모습을 보인다.

줄다리기는 충남 중 특히 천안에서만 볼 수 있는 풍속이다. 줄다리기는 전국적으로 분포돼 있는 마을공동체, 또는 지역축제이지만 천안을 제외한 충남의 다른 지역에서는 이상하게 찾아볼 수 없다. 있다 하더라도 천안처럼 직산읍과 성환읍, 입장면, 성거면이 참여하는 대규모까지는 아니다.

또 지신밟기 행사가 대보름에서 2월 초하루까지 계속되는 것도 충남북부지역의 세시풍속이다.

충남의 향토신제 이후 마을사람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세시풍속은 마을 단위 행사인 성격이 강하다.
◆배를 중요시하는 충남 서해안의 풍속
충남이 자연환경으로 인해 여유롭고 풍류를 즐기며 느리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서해안으로 가면 얘기는 달라진다.

바다에 연해 있고 차령고개를 안고사는 내포지역을 비롯한 서해안지역은 내륙지역보다는 태풍이나 파도, 해일 등 자연재해에 대한 위기감과 충격이 크기 때문에 충남의 다른 지역보다는 전국의 해안지역의 풍속과 많이 닮았다. 특히 바닷사람들에게 바다는 자신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존재이다. 큰 비바람은 물론이고 바다 위에 일렁이는 작은 풍랑에도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는 어부들은 바다 용왕의 존재를 믿고 극진하게 모셨기 때문에 만선과 안전한 귀항을 바라는 성격의 제사가 대표적이다.

충남 북부지역은 안택고사를 중요하게 생각한 반면 서해안지역은 배서낭을 중요시하게 여겼다. 바닷가지역에서 배가 갖는 의미는 단순히 배 이상의 의미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도구이면서 먼 망망대해에서 집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배 고사인 배서낭은 안택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개 배서낭은 배를 가지고 있는 선주가 배에서 고사를 지내는 형식으로 지냈는데 선주뿐 아니라 선주의 가족, 그리고 배에 승선하는 이들까지 대규모로 자행됐다. 이러한 고사는 경기를 비롯해 충남 및 전남북, 경남북, 강원까지 같은 형태를 보이지만 이름은 차이를 보인다. 강원에서는 배성주라고 불렸고 그 밖의 다른 지역에서는 지왕님또는 당(當)이라 일컫기도 했다. 하지만 일반적이면서 가장 익숙한 명칭이 배서낭이다.

배서낭 외에 유명한 제사는 만선을 바라는 황도붕기풍어제이다. 서해안 어부들은 조기 떼를 몰고 다닌다는 임경업 장군을 어로 수호신으로 숭배하는 것이 특징으로 조기가 많이 잡히는 계절이 되면 만선을 바라며 제사를 올렸다.

개울가에 돌을 쌓는 충남 남부의 노두독쌓기는 마을사람들에게 적선해 복을 받는다는 의미가 있다.
◆전북과 비슷한 충남 남부의 풍속
충남 북부지역이 경기 남부지역과 비슷한 성향을 보이는 것처럼 충남의 남쪽 지역은 전북의 북쪽과 공통점을 보인다.

우선 충남 남부와 전북 북부에서 보이는 공통적인 풍속은 정월 열 나흗날이나 보름에 하는 ‘노두독놓기’이다.

충남에서는 논산과 금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노두독놓기는 노둣돌, 즉 하마석(下馬石)을 마을 개울에 놔 일종의 징검다리를 만들어 마을주민들이 개울을 쉽게 건너다니도록 하는 세시 풍속이다. 중장비가 없던 시절에는 돌이나 모래주머니처럼 무거운 것을 사람의 힘으로 옮겨야 했으므로 노두를 놓는 일은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특히 돌다리를 놓거나 돌 대신 가마니에 돌과 흙을 넣은 오쟁이 같은 것을 놓음으로써 남을 위해 적선(積善)하는 것으로 이를 통해 개울을 이용하는 주민에게 좋은 일을 한 셈이 돼 복을 받는다고 여겼다.

충남에서는 대부분 노두독놓기라고 불렸지만 전북에서는 ‘노두놓기’, 혹은 ‘노지놓기’이라고 불렸다.

호미씻이 역시 충남 남부에서 볼 수 있는 풍속 중 하나이다.

호미씻이는 호남뿐 아니라 영남에서도 볼 수 있는 것으로 농부들이 연간 농작물 재배의 핵심적인 활동을 모두 마치고 음력 7월 초중순 무렵에 마을 단위로 날을 정해 하루를 먹고 노는 잔치이자 의례이다. 이것이 호미씻이로 명명된 것은 1년이라는 영농 주기에서 농작물 재배의 핵심적인 활동의 마지막에 위치하는 작업이 호미를 이용한 김매기였기 때문이다.

호미씻이가 등장한 배경은 복합적이다.

17~18세기에는 이앙법 등 이작 체계가 일반화되고 수리시설의 확충으로 논 면적이 늘어났다. 이앙법으로 제초 작업에는 노동력은 절감됐으나 새로운 농작업으로 부각된 모내기는 집약적인 노동력을 요구했다. 그리고 이앙법의 효과는 연간 도맥(稻麥) 이작 체계를 형성해 토지 생산성을 높였다. 맥작(麥作)의 수확과 탈곡에 잇달은 도작(稻作)의 모내기는 맥작과 도작의 교체기에 노동력의 집중도를 현저히 높였다. 특히 농업용수 공급에 어려움이 있던 상태에서 진행된 모내기와 논매기는 두레와 같은 집약적인 공동협업노동으로 처리하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모내기를 위하여 두레가 결성되니 모내기 때의 여세를 몰아서 논매기까지도 마을 단위 공동 노동으로 하게 됐던 것이다. 이 때문에 1년 중 논매기 작업을 마친 후 마을 단위 공동협업노동을 매듭짓는다는 차원에서 농민들이 함께 모여 하루를 쉬는 형태의 호미씻이가 형성된 것이다.

내포=김현호 기자 khh0303@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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