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역사 풍파 이겨낸 강인한 자태


유물이나 유적은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에 어떤 생활상이 있었는지 등에 대한 예상을 더듬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의 유물과 유적 등은 지역학에서 가장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어 지역학을 살피는 데 있어서 이를 살피는 것은 굉장히 의미가 깊다.
때문에 각 지역마다 산재한 유적과 유물들은 국가, 혹은 지역자치단체가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입해 직접 관리하고 있다. 최근에는 지역학이 대두되면서 지자체들은 문화해설사까지 양성해 지역의 정체성을 설명하고 있다. 지역학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음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충남의 유적과 유물은 무엇이 있는지 살피고 이들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과연 무엇인지 짚어본다.

충남에는 모두 221개(지난 2010년 기준)의 국가지정 문화재가 산재해 있다. 이 중 국보가 28개 국가지정 보물이 97개, 국가지정 사적이 48개, 중요무형문화재가 8개 등이다.
국가지정 국보를 살피면 공주의 당금동보살입상, 족좌, 두침, 지석, 석수, 청동 신수경 외 2점, 은제팔찌, 금제뒤꽂이 등이 있고 부여의 백제금동대향로 등이 대표적이다. 충남에서 국가지정 보물이 가장 많은 지역은 바로 공주와 부여인데 이는 백제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공주의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문화재들이 당시 백제의 석축기술 등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부여의 금동대향로는 백제의 세공기술의 전부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것들을 통해 당시 백제의 위상은 물론 왕의 권위들을 살필 수 있다. 이 외에 태안의 태안마애삼존불과 청양의 부석조 대좌, 서산의 서산마애삼존불, 예산의 수덕사 대웅전 등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모두 불교와 굉장히 연관이 있는데 당시 백제가 불교문화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중 마애삼존불은 백제의 미소라고 불릴 정도로 굉장히 아름다운 작품이다.
무형문화재도 다수 충남에 있다. 백제시대부터 전해오는 산유화가가 대표적이고 선비들의 음악인 내포제 시조 등도 충남을 충분히 대표하는 것들이다.
◆백제의 문화 수용력을 볼 수 있는 도성과 성곽 유적
도성과 성곽유적은 한반도 내 삼국이 치열한 영토 확장을 위해 전쟁을 벌였던 대표적인 것으로 도성과 성곽들은 삼국의 색을 띠고 있다.
충남은 백제의 영역에 속했는데 백제의 웅진, 사비시대를 이곳에서 보냈다. 웅진과 사비를 도성으로 했던 백제는 당시 공산성과 부소산성, 나성을 세워 적들의 침략을 막았고 이곳에 도성을 세웠다.
웅진은 현재의 공주로 공주는 북으로 차령산맥과 금강이 2중으로 자연방어선을 이루고 있고 동으로는 계룡산이 막아서는 천혜의 방어요새였다. 당시 백제의 최대 문제는 한강 이남을 확보하려는 고구려로 고구려의 남하를 막아야 하는 것이 최대 현안이었다. 이 당시 백제 개로왕이 고구려의 한성 침공으로 귀천하면서 한성을 벗어나 새로운 도읍을 정해야 하는 문제에 맞닥뜨렸던 것이다. 때문에 당시 백제는 차령산맥과 금강, 계룡산이 방어선 역할을 해주는 공주를 한성 이후 도읍으로 정했다. 특히 공주는 금강이라는 편리한 교통수단이 존재했다는 점도 많은 이유 중 하나였다.
웅진도성은 해발 110m의 공산 정상부와 그 서쪽 해발 85m이 봉우리를 포용해 축조된 산성으로 성 둘레는 수평거리로 2660m이다. 이 중 석축이 1925m이고 토축은 내성 288m와 외성 467m를 합한 755m이다.
당시 축조기법은 돌로 쌓은 북방식과 흙으로 쌓는 남방식을 혼용하는 특이함을 보인다. 흙으로 쌓은 경우 외벽기저에 돌을 놓고 흙다짐을 통해 내구성을 단단히 했고 돌로 쌓은 경우 성곽 밑 부분을 황토로 다져 조성한 후 외벽하단에 흙을 쌓았다. 당시 백제는 성을 세우기 전 지형을 미리 확인하고 건축기법을 달리했다. 경사가 급한 곳은 석축기술을 이용했고 경사가 완만하면 토축방식을 선호했다.
사비도성은 부소산성을 중심으로 건축된 도성으로 국내 고대 도성 중 처음으로 내성과 외곽이 구비됐다. 당시 백제는 도성의 방어를 위해 동쪽으로는 청마산성, 동남쪽으로는 석성산성, 남쪽에는 성흥산성, 서북쪽엔 울성산성, 북쪽에 증산성 등의 거점산성을 축조하고 부소산성 주위에 동북쪽의 청산, 서쪽의 부산성 등 작은 산성들을 배치했다.
여기서 눈여겨 볼 만한 것은 바로 나성이다. 나성의 구조는 토축성벽으로 볼 수 있으나 축조방법은 부분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인다. 구릉에서는 돌을 쌓은 후 비는 공간에 작은 막돌을 채워 넣는 형식을 볼 수 있다. 반면 평지에서는 흙을 주재료로 사용했다. 흙은 주변의 습한지역에서 채굴된 질고 수분이 많은 흙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흙이 사용돼 나뭇가지를 깔면서 성토작업을 한 것으로 보이고 토층 사이사이에 나뭇가지를 넣어 이것을 반복해서 깔았다.
이러한 기법의 축조현상은 한반도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방식으로 북방식과 남방식의 축조기술을 장점만을 따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백제의 문화수용력이 상당했음을 짐작케 한다.
평지에서의 나성 축조기술은 건너편 일본의 그것에서도 확인되는데 이는 백제의 문화가 일본으로 전파됐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고려와 조선대에 들어서도 이들에 대한 보수작업이 진행되긴 했지만 기껏해야 기존 산성들에 덧대는 형식이었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을 정도로 당시 백제의 기술력이 뛰어났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외세침공을 이겨내려는 힘이 엿보이는 건축물
충남에는 화려한 생활상만 보여주는 유적과 유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픈 과거를 보여주는 것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청양 장곡사의 설선당이다. 설선당의 요사채는 먼저 세 칸짜리 주칸 건물을 짓고 오른쪽으로 한 칸의 부엌 간을 달아내었다. 좁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또 한 칸을 들였다. 지붕은 눈썹지붕으로 처리해 달아냄의 극치를 보인다. 부재도 모두 하나같이 구불불한 나무를 이용했다. 부엌 칸은 S 자형처럼 보일 정도이다.
서산 개심사의 요사채 역시 구부러진 부재에서 오는 아름다움이 종루에서는 일부러 구부러진 기둥을 쓰게하는 동기마저 부여했다.
이러한 곡선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게 된 배경에는 곡선을 추구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적어도 두 건축물에는 크게 해당되지 않는다. 이들은 바로 임진왜란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꾸부러진 부재를 사용했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들이 많이 일어섰느데 그 중 승려도 적지 않이 이들에게 합류했다. 승병들의 활약을 두려워 한 왜군은 우리나라를 침략하면서 사찰들을 대규모 없앴다. 당시 사찰뿐 아니라 중요 목조문화재들이 소실됐다. 원나라 침공 이후 가장 큰 피해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사찰들이 없어지면서 승려들이 떠돌아다니자 법당의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고 조정 역시 이를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재원이 없었다. 숲은 모두 불타 재목이 없었고 인부들을 고용할 재정도 턱없이 부족했다. 때문에 최소한의 건축행위밖에 이뤄지지 않았다. 비교적 쓸만한 목재로 대웅전을 복구했고 구부러진 나무들로는 부재로 사용해 요사채를 지었다. 특히 옛 백제 지역이었던 전라와 충청 지방에서 이러한 경향이 훨씬 두드러졌다.
백제의 화려한 기술로 출발된 여유는 때로는 포용력 높은 문화수용력, 나아가 불같은 열정으로 나라를 지키는 불같은 성격으로 표출됐다. 충남의 유적과 유물 등은 이를 대변해주고 있다.
김현호 기자 khh0303@ggilbo.com
관련기사
- [충남의 모든것 충남학] (27) 충남의 유물과 성곽유적
- [충남의 모든 것 충남학] (26)금강문화
- [충남의 모든 것 충남학](25) 내포문화
- [충남의 모든 것 충남학](24)충남 여성문인들의 활동과 업적
- [충남의 모든 것 충남학](23)충남의 언어
- [충남의 모든 것 충남학] (22) 충남의 건축
- [충남의 모든 것 충남학](21) 충남의 시조
- [충남의 모든것 충남학] (20)충남의 음식들
- [충남의 모든 것 충남학] (19)충남의 5대정신, 항일운동으로 발전
- <충남의 모든 것 충남학>(18)애국의 고장,충남
- [충남의 모든것 충남학](17) 예절의 고장, 충남
- <충남의 모든 것 충남학> (16)충절의 고장, 충남
- [충남의 모든 것 충남학] (15) 충남, 양반의 고장 계기부터 '멍청도' 로 변질되기 까지
- <충남의 모든것 충남학>(14) 충남의 5대 정신
- <충남의 모든것 충남학>(13) 서천 유부도 갯벌
- <충남의 모든것 충남학>(12) 충남의 영산, 계룡산
- [충남의 모든것 충남학](11) 충남의 젖줄 금강
- <충남의 모든것 충남학>(10)근·현대의 충남
- <충남의 모든것 충남학> (9)조선시대의 충남
- <충남의 모든 것 충남학>(8) 고려시대의 충남
- <충남의 모든것 충남학>(7)백제시대의 충남
- <충남의 모든 것 충남학>(6)백제시대 이전의 충남
- <충남의 모든것 충남학>(5)문화적 지리로 살펴본 충남
- <충남의 모든것 충남학> (4) 역사적 지리로 살펴본 충남
- <충남의 모든것 충남학>(3)물리적 지리로 살펴본 충남
- <충남의 모든 것 충남학>(2)어떻게 연구돼야 하는가 '충남다움' 의 숨겨진 +α 를 찾아라
- <충남의 모든것 충남학> (1)내포시대 새 동력 '충남다움'
